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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통

6.25 전쟁의 개인화기들-따발총과 M1개런드

따발총과 M1개런드

대당 1000억 원이 넘는 고성능 전투기가 수백 킬로미터를 단숨에 날아가 발당 수 억이 넘는 미사일로 표적을 정확히 파괴시킬 수 있는 21세기에도 수십만 원짜리 소총으로 무장한 보병은 여전히 전쟁에서 꼭 필요한 존재로 대접 받는다. 표적을 파괴하는 것은 첨단무기만으로도 가능하지만, 목표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는 일은 여전히 보병의 영역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1950년 6월25일 북한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도 그 어떤 전쟁보다 보병의 비중이 컸던 전쟁 중 하나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고 산이 많은 한반도의 지형적 특성은 그만큼 보병이 활약할만한 공간을 많이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따발총? 다발총?  PPSh-41!


6.25 전쟁에 참전했던 국군 노병들의 회고담에서부터 30여 년 전 수많은 시청자들을 흑백 브라운관 TV 앞에 불러 모았던 드라마 ‘전우’에 이르기까지 북한군 보병의 휴대 무기를 묘사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총이 속칭 ‘따발총’이다.

 

구 소련의 PPSh-41 기관단총. 6·25 당시 북한군 보병사단은 흔히 ‘따발총’이라 불리는 이 기관단총을 2,100여 정 정도씩 보유했다.
현재 국내의 각종 안보 기념관에 20정 이상이 남아있다.

 

 

‘따발총’의 정체는 다름 아닌 PPSh-41라는 구 소련제 기관단총(Submachine Gun)이다. PPSh-41은 다른 소련 무기와 마찬가지로 비교적 간단한 구조로 대량생산에 용이해 제2차 세계대전 중 수백 만 정이 생산됐을 만큼 소련군의 베스트셀러 기관단총이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북한군 보병의 주력 무기처럼 흔하게 등장하지만 실제로 북한군 보병의 주력 총기는 아니었다. 6.25 개전 초반을 기준으로 약 1만여 명 내외로 구성된 북한군 보병사단에서 권총만 휴대한 장교들이 1300여 명, 보병소총은 5900여 명, 기병소총은 2150여 명, ‘따발총’은 2100여 명의 병력이 휴대했다. 이처럼 ‘따발총’의 보유 비율이 높지 않았음에도 주력 소총보다 더 널리 알려진 이유는 그만큼 무척이나 인상적인 무기였기 때문이다. 당시는 물론이고 현재도 PPSh-41처럼 탄창에 무려 71발의 총알이 들어가는 소총이나 기관단총은 흔하지 않다. 71발이라면 짧은 교전에서는 탄창 교환 없이도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수량이다.

 

또한 북한군에는 사단 자동총중대 등 장교를 제외한 중대 전투원 전원이 PPSh-41로 무장한 별도의 부대가 존재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연대 정찰 소대 등 일선에서 작전하는 부대일수록 PPSh-41의 무장 비율이 높았던 점도 국군 노병들의 머릿속에 PPSh-41의 기억이 강하게 남은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전쟁 당시 국군 공식 문서에는 여러 발을 연속해서 쏠 수 있다는 의미로 ‘다발총(多發銃)’이라고 표기한 경우도 많다. 하지만 ‘따발총’의 ‘따발’은 ‘다발’(多發)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PPSh-41 기관단총에서 총알이 들어있는 원형의 드럼 탄창 모양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머리에 짐을 얹을 때 사용하는 ‘또아리’의 함경도 사투리가 ‘따발’인데, 둥글게 생긴 드럼 탄창이 ‘따발’처럼 보여서 ‘따발총’이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것이다. 
 


북한군의 주력 소총 M1891/30 모신-나강


너무도 유명한 ‘따발총’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실제 6.25 당시 북한군의 주력 소총은 M1891/30 모신-나강이었다. 6.25 당시 북한군 흑백 사진 속에 총검을 달면 사람 어깨 높이만큼이나 길어 보이는 소총이 바로 M1891/30이다. 제식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M1891은 제정 러시아 시절인 1891년에 처음으로 개발된 소총이다. 러시아군 장교였던 세르게이 모신이 개발한 소총에 벨기에의 총기 설계자였던 나강이 제안한 장전 방식을 결합한 이 소총은 간단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잔고장이 없고 신뢰성이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제정 러시아 시절인 1891년에 처음 개발된 M1891 모신-나강 소총은 제1·2차 세계대전까지 소련군의 주력 소총이었고,
6·25 당시에도 북한군의 주력 소총이었다.

 

 

러시아를 계승한 소련은 1930년 M1891 보병총의 총열 길이를 80.2cm에서 73cm로 줄이고, 조준기를 신형으로 교체했다. 이 개량형이 바로 M1891/30이다. M1891은 이밖에도 여러 가지 개량형 모델이 많지만 작동방식이 볼트액션식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볼트액션식 소총이란 사격을 한 후 손으로 장전손잡이를 당겨 노리쇠를 움직여 탄피를 배출해야만 다음 탄환을 쏠 수 있는 구조의 총을 의미한다. 북한군이나 2차대전 당시 소련군이 PPSh-41 같은 기관단총을 대량으로 운용한 이유도 바로 주력 소총인 M1891이 연속 반자동 사격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국군의 주력소총 M1 개런드

“처음 지급받은 M1 소총을 받아 보니 너무 무거웠어요. 이걸 가지고 다니면서 어떻게 싸우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같은 M1 개런드 소총의 무거운 무게에 대한 불만은 6.25 전쟁에 참전했던 국군 노병들에게 흔히 들을 수 있는 레퍼토리 중의 하나다. 하지만 M1개런드 소총의 무게 4.3kg은 당시 다른 나라의 주력 소총에 비해 특별히 더 심하게 무거웠던 것은 아니다. 4kg가 넘는 소총이 흔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M1개런드 소총은 미국 스프링필드 병기창의 민간인 기술 책임자인 존 켄티우스 개런드에 의해 1936년 개발됐다. M1 개런드 소총은 군에서 주력으로 사용한 제식 소총 중 최초의 반자동 소총이라는 점에서 소총 역사에서 특기할만한 존재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를 기준으로 다른 나라에도 반자동 소총은 있었지만 M1개런드처럼 제식 소총으로 대량 보급된 사례는 거의 없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주력 제식 소총이자, 6·25 당시 국군의 주력 소총이었던 M1 개런드 소총. 흔히 ‘M1 소총’이라고 부른다.
소총 밑에 탄환 8발이 묶인 클립 3개가 보인다. <출처: (cc) Curiosandrelics at Wikipedia.org>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99식 소총, 소련의 M1891 모신-나강 소총 등은 모두 볼트 액션 방식이었다. 이 방식의 소총은 탄환 1발을 사격한 후 노리쇠를 수동으로 후퇴시켜 탄피를 제거해야 한다. 하지만 M1 같은 반자동식 소총은 사격 후 자동으로 탄피가 배출되어 방아쇠만 당기면 다음 탄환을 사격할 수 있다. 6.25 당시 북한군의 주력 소총도 볼트액션식의 M1891/30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반자동식이었던 M1개런드는 나름 그 시기에는 고성능의 소총이었던 셈이다. 1949년 7월 당시 우리 군이 보유한 M1 개런드 소총의 총량은 4만2636정이었다. 6·25전쟁 중 한국군의 병력 규모가 꾸준히 늘어났지만 미군이 47만여 정을 추가로 제공, 전쟁 내내 국군 주력 소총의 자리를 지켰다.

 


가벼움의 미학, 카빈 소총


카빈 소총은 1930년대 후반 전투부대 요원이 아닌 전투 지원·전투 근무 지원 부대용으로 주로 지급할 목적으로 개발됐다. 카빈의 무게는 2.49kg이고 길이도 90.37cm로 M1개런드 소총보다 20cm 정도 짧다. 이런 짧은 길이와 무게 덕에 휴대성이 좋아 큰 인기를 끌었다. 카빈소총의 카빈(carbine)은 원래 특정 소총의 고유명사가 아니라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기병용 소총을 의미하는 보통명사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는 소총을 보병총과 기병총(카빈)으로 구별, 제작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애당초 보병총과 기병총을 별도로 제작하기도 했고 혹은 발사 장치는 동일한 구조를 가진 소총을 길이만 다르게 제작해 구분하는 경우도 흔했다. 20세기 이후부터 전장에서 말을 타는 기병이 점차 사라졌지만 일반 소총보다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총은 여전히 기병총이라고 부른다. 굳이 분류하자면 M1개런드 소총은 보병총, 카빈은 기병총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카빈소총’이라고 부르는, 미군 카빈(=기병용) 소총의 대표적 모델인 M1 반자동식 소총

 

 

흔히 ‘카빈소총’으로만 부르지만 원래 미국의 카빈소총은 M1·M1A1·M2·M3 등 네 종류가 있다. ‘M1카빈’이 표준형으로 반자동식이다. M1A1은 개머리판이 접혀지는 접철식인 점이 다르고, M2는 연발 사격이 가능한 자동식 소총이다. 카빈과 M1개런드 소총은 구경(7.62mm)은 동일하지만 화력 차이는 컸다. M1 개런드 소총용 탄환의 탄피 길이는 63mm이지만 카빈 소총용은 33mm에 불과하다. 총구 에너지도 뚜렷하게 차이가 나서 카빈용 탄환이 1074줄(J)로 M1개런드 소총탄 3663줄의 3분의 1에 불과해 전형적인 소총보다는 기관단총에 가까운 특성을 지녔다. 카빈은 ‘가벼움의 미학’을 가진 총이었지만 탄환 자체의 에너지가 M1 개런드 소총의 3분의 1에 불과하므로 사거리도 짧고 관통력도 떨어지는 것이 약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