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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통

넓은 지역을 순식간에 초토화 한다-다연장로켓포

다연장로켓포

다수의 적을 소수로 제압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아군보다 많은 적을 보고도 후퇴하지 않는 용기가 우선이겠지만, 용기 하나만으로 한 명이 수백 명을, 혹은 수천 명을 상대로 싸울 수는 없다. 중과부적의 상황에서도 적군을 한 순간에 휩쓸어 버릴 수 있는 첨단 무기체계가 요구된다.

 

 

최초의 다연장 로켓 무기는 신기전

 

우리 선조들은 이미 1448년 이런 무기체계를 현실화시켰다. 바로 신기전(神機箭)이 그것이다. 신기전은 조선시대의 로켓추진화살로, 이미 고려시절 최무선에 의해 발명된 로켓병기인 주화(走火)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신기전은 크기와 형태에 따라 대신기전(大神機箭), 중신기전(中神機箭), 소신기전(小神機箭), 산화신기전(散火神機箭)으로 구분될 정도로 다양한 무기체계로 구성되었다. 신기전이야말로 세계 최초로 발명된 다연장 로켓 무기체계였다.

  

최초의 다연장 로켓 무기인 조선의 신기전의 복원 모습

 

 

북한의 방사포 = 소련계 다연장 로켓포

 

신기전과 같은 다연장 로켓 무기체계는 5백여 년 후인 제2차세계대전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소련은 BM-13 카츄사(Katyusha) 다연장 로켓을 1939년부터 실전 배치하여 독일군을 공포에 떨게 했다. 트럭에 로켓발사기를 14개에서 48개까지 장착하는 카츄사는 무려 12,000평의 면적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카츄사는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며, T-34 전차와 IL-2 슈트르모빅 대전차 공격기와 동시에 소련을 구한 3대 무기체계로 평가되었다. 이후 소련의 영향으로 수많은 동구권 국가들이 다연장 로켓을 화력지원의 핵심요소로 삼으면서 북한도 다양한 다연장 로켓 무기를 보유하게 되었다. 북한에서는 이를 방사포라고 부른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소련의 다연장 로켓 무기

북한의 방사포. 다연장 로켓 무기이다.

 

 

창에는 창으로, 다연장 로켓포에는 다연장 로켓포로

 

우리나라도 한국군 최초의 다연장 로켓무기인 ‘구룡’을 개발하였다. 130mm 로켓탄을 발사하는 K-136 구룡 다연장로켓포는 당시 북한이 다량 보유한 122mm 방사포에 대항하기 위해 국방과학연구소 주관으로 독자 개발되어 1981년부터 실전배치를 시작했다. 구룡의 성능은 전반적으로 북한의 122mm 방사포와 유사하며, 36발의 로켓을 장전하여 개량형 로켓탄을 사용하면 최대 36km까지 발사할 수 있다.

 

한편 북한은 122mm보다 사정거리가 증가된 대구경 240mm 방사포를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즉 240mm M-1985/M-1991 방사포를 3백여 문 이상 보유하면서 43km(M-1985)와 65km(M-1991)에 이르는 장거리 타격능력을 확보해왔다. 특히 1990년대 초반에 서부전선에 이들 방사포를 전진 배치하면서 “서울 불바다”와 같은 노골적인 협박을 하기에 이르렀다. 새로운 카드를 꺼내든 북한에 대하여 우리 군의 대응은 시급한 일이었다. 북한의 240mm 방사포, 170mm 자주포 등을 사거리가 길다고 하여 ‘장사정포’라고 하는데, 이들 장사정포를 무력화하기 위한 대화력전 전력 가운데 가장 유효한 것이 주한미군이 일부 보유하던 M270 MLRS였다. 이에 따라 우리 군도 1998년부터 MLRS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개발된 구룡 다연장로켓포(K-136)

 

 

‘강철 비’를 뿌리는 미군의 다연장 로켓포, MLRS


MLRS의 가장 큰 장점은 넓은 지역을 순식간에 초토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대지 로켓 12발을 장전하는 MLRS의 화력은 155mm 이상 급의 곡사포 18발을 동시에 발사한 결과와 동등하다. MLRS에서 발사된 M26 로켓탄두는 644개의 M77 DPICM(이중목적고폭탄) 자탄을 포함하는데, 이것이 약 200x100m의 면적에서 분산하여 표적이 된 지역을 제압한다. 직감적으로 표현하자면 MLRS의 공격 한 번으로 축구장 3배의 면적이 초토화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미군에서는 MLRS를 일컬어 "사령관이 애용하는 산탄총(the commander's personal shotgun)"이라고 부르며, 영국군에서는 "격자지형 지우개(Grid Square Removal System)" 이라고 부른다.

 

MLRS의 또 다른 장점은 빠른 재장전 능력이다. 한 발 한 발 손으로 장전해야하는 구세대의 다연장 로켓과는 달리 MLRS는 3분 안에 재장전이 가능하다. 거기에 궤도식 차량 형태로 우수한 야지기동성을 확보하였을 뿐만 아니라, 최고시속 또한 64km에 달해 상당히 빠르다. 즉 MLRS는 일격에 넓은 지역에서 밀려드는 적을 섬멸하고 '빠른 발'을 바탕으로 일순간에 사격위치를 이동할 수 있다. 그러니, 아무리 우수한 대포병능력을 갖춘 적이라도 '치고 빠지기'에 능한 MLRS를 요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미국의 대표적 다연장 로켓무기인 M270 MLRS

 

 

MLRS는 1991년 걸프전에서 미국이 230대, 영국이 16대를 파병하여, 최초로 실전에서 배치•운용되었다. MLRS는 당시 이라크군의 SA-2/3 지대공 미사일 발사기지 30곳 이상을 초토화 시켰으며 약 200대의 장갑차량을 파괴시켰다. MLRS의 이중목적고폭탄 공격을 받았던 이라크군은 이를 ‘강철비(Steel Rain)’라고 부르며 공포에 떨었다고 한다.
 
MLRS는 초기형인 M270과 개량형인 M270A1이 있는데, M270A1은 사격통제 시스템과 발사장치 매커니즘이 개량되어, 재장전 시간이 45% 줄어들고 발사까지의 시간은 16초(현재는 93초) 이내로 대폭 단축되었다. 또한 M270A1에서는 신형 M30/M31 GMLRS(Guided-Multiple Launch Rocket System) 로켓탄이 사용될 수 있다. GMLRS는 GPS 유도방식으로 매우 정확한 타격이 가능하여 ‘70km 저격탄환’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특히 200파운드(90kg)의 고폭약탄두를 장착한 M31 단일고폭탄은 강화진지에 대해 유용한 공격을 할 수 있어서 미군은 2019년까지 3만3천 발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제일 강한 화력은 에이테킴스 

 

여기에 더하여 MLRS에게는 또 다른 숨겨둔 펀치가 있다. 바로ATACMS(Army Tactical Missile System 육군전술미사일체계, 에이타킴스, 에이테킴스)라는 미사일이다. ATACMS는 원래 증원되는 소련군 기갑부대를 원거리에서 제압하기 위해 전술핵미사일로 개발이 시작되었는데, 1991년 전술핵 전면폐기조치에 따라 재래식 중거리 유도무기로 다시 태어난 미사일이다. 원래 목표가 전술핵 미사일이었던 만큼 ATACMS는 대형 표적 및 종심 표적을 타격하는 시스템으로 완성되었다.

 

우리 군이 사용하는 ATACMS는 MGM-140 블록1과 블록1A의 2가지 종류이다. MGM-140A ATACMS 블록1 미사일은 내부에 텅스텐 합금재질의 M74 자탄을 약 950개 수납하고, 최대 165km까지 공격할 수 있다. 블록1은 1천 개에 가까운 자탄을 비산시켜 축구장 4개 크기의 면적에 걸쳐 적 병력과 경장갑 표적을 제압하는 가공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편 MGM-140B 블록1A는 자탄의 수를 300여 개로 줄인 대신 사거리를 300km로 연장시킨 개량형 미사일로, GPS 및 관성항법장치의 개량으로 정밀사격이 가능하다. 유사한 모델로는 MGM-168 ATACMS 블록4A가 있다. 블록4A는 M74 자탄 대신에 500파운드(227kg)의 WDB-18/B 단일고폭탄을 장착하여 사거리는 블록1A와 유사한 300km이다.


MLRS에서 발사되는 ATACMS 미사일

 

 

한국형 MLRS를 기다리며


MLRS는 우리 국민을 보호하는 귀중한 전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런 무기체계가 국산이 아니라는 점이다. 비록 MLRS의 대당가격이 57억 원 가량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게다가 북한의 240mm 방사포에 대항할 전력이 필요한 실정이다. 그래서, 2013년까지 230mm급 차기 다연장 로켓포를 국내 개발하게 되었다. 차기 다연장 로켓은 군단급 부대에 배치된다. 북한의 야포 발사를 탐지하는 대(對)포병레이더와 연동되어 대포병레이더가 제공한 적의 위치에 대하여 즉각적이고도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다. 차기 다연장 로켓 사업은 한창 진행 중이다. 우리 육군이 드디어 21세기형 신기전을 보유하게 될 날을 다시 한 번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