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 항공기 개발은 ‘OXCART 프로젝트’라는 명칭이 붙었다. 이 프로젝트는 U-2 개발로 유명한 미 록히드사의 전설적인 극비 프로젝트팀 ‘스컹크 웤스(Skunk Works)’팀이 맡았다. 1960년5월 U-2기가 구 소련의 대공미사일에 격추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신형 정찰기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OXCART 프로젝트’를 통해 등장한 SR-71의 요구성능은 순항속도 마하 3.29에 운용고도 9만 피트라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수준이었다. 마하 3 이상의 고속비행에서는 대기와의 마찰열 때문에 기체 표면온도가 260도 이상으로 상승하고 엔진 배기부는 1000도 이상까지 올라간다. 일반 항공기 소재는 이러한 온도에서 견딜 수 없기 때문에 SR-71은 기체의 대부분이 타이타늄으로 제작됐다. 기체 표면에는 적 레이더 전파를 흡수하고 표면 마찰온도를 낮추기 위해 특수 검정 페인트가 칠해졌다.
마하 3의 초고속에서 작동할 수 있는 특수 신형엔진의 개발도 추진돼 기존 터보제트 엔진 구조를 활용, 추력을 극대화시킨 프랫 & 휘트니의 J-58 터보램제트 엔진이 쌍발로 탑재됐다. SR-71은 빠른 속도만큼 놀라운 정찰능력을 자랑했다. 8만 피트(약 24km) 고공에서 시간당 10만 평방 마일의 지구 표면을 정찰할 수 있었다. 탑재된 카메라를 통해 8만 피트 상공에서 골프장의 골프공을 촬영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광학 정찰장비외에 전자정보 수집장비(ELINT), 적외선 정찰장비 등을 탑재해 임무에 맞게 사용했다.
SR-71은 총 31대가 생산됐으며 미 공군ㆍ해군 및 나사에서 운용됐으나 사고로 인해 총 12대를 잃었다. 1990년 높은 유지비용과 정찰위성의 발달로 26년간의 정찰임무를 마치고 퇴역했다가 95년부터 97년까지 일시적으로 2대가 작전에 복귀했지만 결국 SR-71 프로그램은 1998년 완전 폐기됐다. SR-71은 1960~80년대 한반도 긴장사태 발생시에도 수시로 출동해 정찰활동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1년8월 북한은 서해상을 비행중이던 SR-71을 향해 SA-2 대공미사일을 발사했으나 SR-71의 빠른 속도와 높은 고도 때문에 명중시키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도 최일선에서 활약하는 정찰기 U-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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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71과 함께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정찰기는 U-2다. SR-71에 앞서 개발됐지만 5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최일선에서 활약하는 장수 항공기다. 2010년 11월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 이후 대북 정보감시태세 ‘워치콘’이 격상됨에 따라 더욱 바빠진 항공기가 주한미군의 U-2 정찰기다. 오산기지에서 출동하는 U-2 정찰기는 매일 한차례 비무장지대(DMZ) 인근 상공을 비행하면서 북한군 동향을 감시하고 있다. U-2기는 원래 고도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개발된 전략 정찰기다. 적군 병력이나 장비의 배치, 이동상황 등을 정찰하는 전술정찰보다는 적국의 전략무기 배치상황, 군수산업 능력 등을 파악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다. 이 때문에 U-2가 개발자금을 댄 것도 미 공군이 아니라 미 CIA였다. SR-71처럼 미 록히드사의 ‘스컹크 웤스’팀이 개발에 참여했다.
U-2기는 1955년 8월 첫 비행을 한 뒤 이듬해부터 동유럽과 구 소련 영공 내에서 정찰비행을 시작했다. 보통 7만 피트(21km) 이상의 고공을 비행했으며 당시 요격전투기나 지대공 미사일이 도달할 수 없는 고도여서 적대국 상공에 직접 날아들어가 정찰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U-2기 천하’는 오래가지 못했다. 1960년 5월 1일 프란시스 게리 파워즈가 조종한 U-2가 소련의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되면서 큰 파문이 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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