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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통

현대판 갑옷-방탄 조끼

방탄조끼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병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큰 공포는 빗발치는 총알에 맞아 죽는 것일 터이다. 그러나 실제 최근의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의 결과, 전쟁사망자 가운데 총상이 사망원인이었던 것은 12~13%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나 총에 맞는 데에 대한 공포는 전투력을 충분히 감소시키고도 남는다. 물론 여기에는 해결책이 있다. 바로 방탄 조끼이다.

 

 

세계 최초로 실전 배치된 방탄 조끼는 조선에서 발명

방탄조끼는 그야말로 갑옷의 현대판이다. 막는 대상이 적의 화살이나 창검 대신에 적군 소총의 탄환이나 폭탄의 파편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물론 쇠나 구리로 만든 미늘 대신에 방탄재질의 섬유나 플라스틱, 또는 세라믹 등이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세계 최초의 실전 방탄 조끼는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바로 면제배갑이다. 조선말기 병인양요에서 서양 총기의 위력에 경악한 흥선대원군은 총탄을 방어할 수 있는 갑옷의 개발을 명하게 된다. 개발과정에서 면갑(면 재질의 갑옷)과 철갑(철 재질의 갑옷) 등 다양한 실험이 행해졌는데, 특히 면갑에서 면포 12겹까지는 총알이 뚫지 못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면제배갑은 조선군에게 보급되기 시작하여 신미양요 때는 실전에 적용되었는데, 이것은 세계 최초로 방탄조끼가 실전에서 사용된 전투이기도 했다. 비록 면제배갑은 전투력에 도움은 안 되었던 것으로 평가되나, 신무기를 개발하려는 노력과 의지 측면에서는 의미가 크다.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개발된 면제배갑 
<사진: 국방일보>

1920년대의 방탄 조끼 실험 장면

 

 

1차대전과 2차대전을 거치면서 여러 가지 방탄조끼들이 개발되었지만 이들은 강철이나 면 소재에 바탕한 것으로 엄청난 무게와 약한 방호력으로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한국전쟁에서 미군은 강화 플라스틱과 알루미늄 조각을 나일론 소재와 결합한 M1951 조끼를 선보이기도 했는데, 이것 역시 총알을 직접 막는 방탄조끼라기보다는 도비탄(목표물에 맞고 튕긴 탄환)이나 폭탄의 파편을 막는 수준에 불과했다.

 

 

케블라, 다이니마 등의 신소재 혁명

그러나 1970년대부터 매우 질기고 탄성이 뛰어난 첨단섬유 소재들이 개발되면서 방탄조끼는 혁명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케블라(Kevlar)’와 ‘다이니마(Dyneema)’이다. 1972년 듀폰이 선보인 케블라는 아라미드 섬유의 일종으로 강도와 탄성률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특히 케블라는 강철과 같은 굵기의 섬유로 만들었을 때 강철보다 5배나 강도가 높아 방탄소재로는 적격이었다.


한편 다이니마는 1979년 네덜란드의 DSM사가 개발한 폴리에틸렌 계열의 섬유로 세상에서 가장 강하면서도 가벼운 섬유로 인정받고 있는데, 1990년대가 되어서야 양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현재까지 아라미드 섬유 계열의 방탄소재로는 케블라(듀폰), 트와론(테이진), 헤라크론(코롱) 등이, 초고분자량 폴리에틸렌 섬유계열로는 다이니마(DSM/토요보), 스펙트라(하니웰) 등이 사용되고 있다.

 

방탄조끼는 방탄 섬유를 수십 겹 겹쳐서 만들어진다. 방탄 조끼의 단면(좌)과 멈춰진 탄환(우) <사진 : Inteledge Inc.>

 

 

방탄 조끼의 기준


이렇게 신소재의 채용으로 더욱 가벼워진 방탄조끼는 1970년대 말이 되어서는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경찰관들에게 방탄조끼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다양한 모델들이 출시되게 되었다. 특히 세컨드챈스라는 방탄 조끼 회사는 사장이 직접 방탄 조끼를 입고 자기 가슴에 총을 쏘는 시연을 벌이면서 많은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러나 워낙 잡다한 회사들과 제품이 난립하자 미국 법무부에서는 방탄 조끼에 대한 기준을 설정하게 된다.

 

방탄 조끼에 기준이 필요한 이유는 당연하다. 권총탄을 막을 수 있는 방탄 조끼가 소총탄도 막을 수 있는지 보장이 없고, 한 발을 막을 수 있는 조끼도 여러 발을 맞으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조 직후에는 성능이 좋으나 시간이 지나면 소재가 변하면서 방어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생명에 직결되는 물건이니 만큼 기준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제정된 것이 바로 법무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Justice)의 NIJ 방탄기준이다. NIJ 기준에서는 최소한 6발에 대한 방탄능력을 요구하며, 방탄성능이 최소한 6년간 유지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 기준은 여러 레벨로 나눠지는데, 대략적인 기준을 단순히 요약하면 아래 표와 같다.

 

NIJ 방탄 레벨의 요약표

 

 

방탄 조끼의 구조

이제 겨우 사람이 입을 만해진 방탄조끼가 나왔는데, 위에서 보는 것처럼 그 구분이 매우 복잡하다. 보통 경찰관의 경우 제복 속에 입는 은닉형 방탄조끼의 경우 레벨 IIA나 레벨II를 입는다. 레벨IIIA부터는 보통 외부에 껴입는 형태이다. 보통 군용 방탄조끼는 레벨IIIA 정도가 된다.

 

레벨IIIA까지는 보통 부드러운 방탄섬유를 사용하지만 레벨III부터는 단단한 판 형태를 띄게 된다. 방탄판의 경우에는 보통 폴리에틸렌 계열을 사용하거나 세라믹 복합소재를 사용하며, 전신이 아니라 심장을 중심으로 한 주요부분만을 가리는 형태가 된다. 그래서 보통 레벨III 이상의 방탄조끼의 구성은 외피, 소프트패널(방탄 섬유), 하드플레이트(방탄판) 등으로 구성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소프트패널 없이 하드 플레이트만을 입고 다니는 경우도 있다. 사막 등 기후가 매우 높은 지역에서는 최대한 간편하게 방탄조끼를 입고 다니게 되는데, 그래서 실제 전장에 투입되는 특수부대원들은 플레이트 캐리어(방탄 조끼의 일종)에 하드 플레이트만을 넣어 다니는 경우가 꽤 많다.

 

한편 최근에 주목할 만한 방탄조끼로는 피나클 아머에서 만든 ‘드래곤 스킨‘이라는 제품이 있다. 드래곤 스킨은 하드플레이트를 2인치 직경의 디스크로 만들어서 전신을 보호하도록 만든 제품이다. 드래곤 스킨은 획기적인 제품으로 언론의 각광을 받았지만, NIJ 레벨III의 6년 유효기간 인증을 마치지 못하여 현재 인증제품목록에서 제외된 상태이다.

 

 

미군의 신형 방탄조끼(IOTV). 7.62mm 소총탄을 막을 수 있는 하드플레이트가 전후방에 장착된다. (좌)
화제의 방탄 조끼, 드래곤 스킨의 X레이 사진(우)

 

 

발전을 거듭하는 방탄조끼들

한편 방탄조끼는 단순히 그 방탄 소재 뿐만 아니라 외피에서도 커다란 발전이 일어났다. 방탄조끼는 요즘 탄창이나 수통 등 다양한 군장을 수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고 있는데, 그 덕분에 무게가 엄청나게 증가한다는 단점이 생겼다. 특히 문제는 착용자가 물속에 빠지거나 전복된 차량 내부에 갇혔을 때 방탄조끼를 벗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이런 사실에 주목하여 최근에는 줄만 한번 당기면 방탄조끼가 조각조각 분해(?)되어 저절로 벗겨지는 제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한때 이런 제품은 특수부대만을 위한 고가의 제품으로 생산되다가, IOTV(Improved Outer Tactical Vest) 같은 제품은 이제 미 육군 전체에 지급되고 있다.

 

 

미군의 IOTV 방탄 조끼는 단번에 분해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교육 받는 병사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