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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통

수송에서 전투로 진화한다-장갑차

장갑차

1차 세계대전 때 영국군의 마크I 전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이 전장의 강철괴물은 무려 8명의 승무원을 탑승시키며 전투할 수 있는 장갑차이자 전차였다. 어떤 의미에서 세계 최초의 전차는 세계 최초의 장갑차이기도 했다. 물론 1차대전 종전시에 등장한 마크IX(Mark IX)이 세계 최초의 장갑차이지만 말이다.

 


전차와 함께 전쟁의 판도를 바꾼 장갑차

세월이 흘러 2차 세계대전 때의 장갑차는 전차와 함께 전쟁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빠른 속도로 유럽을 유린한 독일군의 전격전을 가능하게 한 것은, 전차뿐만 아니라 장갑차의 힘도 컸다. 빠른 속력과 적절한 방호능력으로 보병을 운송할 수 있는 장갑차가 있었기에, 전차도 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대표적인 예가 독일의 Sd.kfz 251 “하노마그” 중형장갑 보병수송차였다.

 

Mark IX. 최초의 장갑차, 30명까지 탑승이 가능했다.

Sd.kfz251 독일의 장갑 보병수송차 <출처: (cc) Deutsches Bundesarchiv>

 

 

냉전시절에는 미국의 M113이 “전장의 택시”로 이름을 날렸다. 우리 육군에서도 운용한 바 있는 M113은 전 세계적으로 8만대 이상 생산되면서 명실 공히 자유세계의 병력수송장갑차(Armoured Personnel Carrier; APC)로 위치를 굳혔다. 특히 엄청난 숫자를 자랑하는 소련의 기갑전력에 대항하여, M113은 TOW 대전차 미사일 등의 무장을 장착하면서 전투장갑차로 활용되기도 했다. 또한 전차가 부족했던 베트남전에서는 ACAV키트를 장착한 M113들이 정글지역에서 전차 없이 단독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수송에서 전투로, 병력수송장갑차에서 보병전투장갑차로

장갑차의 기본적인 역할은 병사를 적의 포화로부터 안전하게 전장으로 실어나르는 것이다. 전차만 앞장서면 모든 전선이 무너질 것 같지만 실제 전쟁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전차가 목표를 탈취하더라도 보병의 협동작전 없이는 목표의 계속적인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초기의 장갑차는 보병수송용이었고, 보병은 하차한 상태에서만 전투가 가능했다. 그러나 독일의 전격전의 경험을 토대로 전차와 동반하는 보병이 적을 제압하려면 탑승한 상태에서 전투해야 유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탑승전투라는 전술개념에 따라 보병전투장갑차(Infantry Fighting Vehicle; IFV, 보병전투차)가 등장했다. 

 

BMP-1 구소련 보병전투장갑차

미국 브래들리 보병전투장갑차

 

 

그러나, 본격적인 보병전투장갑차를 최초로 등장시킨 것은 소련이었다.  1967년 소련은 BMP-1를 등장시켜 서방을 경악시켰다. 특히 BMP-1은 겨우 13톤의 무게에 2m도 되지 않는 높이의 작고 낮은 형상에다가 약한 장갑을 갖추었지만 화력만큼은 엄청났다. 주무장으로 73mm 활강포와 AT-3 새거 대전차미사일을 보유하여 전차와 대적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것이다. 이런 “BMP충격” 이후 전 세계의 장갑차들은 병력수송 장갑차의 개념에서 보병전투장갑차로 진화하게 되었다. 미국의 브래들리, 독일의 마더/퓨마, 영국의 워리어, 스웨덴의 CV90 등 성공적인 개발사례들이 전 세계적으로 목격되었다.

 

이제 보병전투차는 대다수의 적 장갑차량이나 심지어는 전차와도 교전하면서 전차의 역할까지 수행하기도 한다. 제1차 걸프전에서 미군의 브래들리 장갑차는 에이브람스 전차보다도 더 많은 적 장갑차량을 파괴했던 것이다.

 


우리 육군의 장갑차 역사

우리 군은 6.25 전쟁 발발 당시만 해도 전차는 없었지만, M8 그레이하운드 장갑차와 M2/M3 반궤도 장갑차를 보유하고 있었다. 특히 37mm 기관포가 탑재된 M8 장갑차는 도저히 적수가 될 수 없는 북한의 막강한 T34 전차에 맞서 지연전을 벌이는 등 맹활약을 했다.

 

M8 그레이하운드 장갑차

M113 장갑차

 

 

이후 우리 군은 미국의 대외군사원조로 M113을 400여대 가량 인수하여 운용한 바 있다. 이밖에도 우리 군은 도심 및 기지방어작전을 위하여 KM900 장갑차를 운용해왔다. 그러나 율곡사업에 의해 대우중공업(현 두산 DST)에서 개발한 국산장갑차 K200이 등장하면서 M113은 퇴역을 맞았다.

 

K200은 보병전투장갑차라는 전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개발된 “한국군에 의한, 한국군을 위한, 독자무기체계”였다. K200은 80년대 후반부터 실전 배치되기 시작하여, 이제는 전군에 보급되어 있다.


K200은 말레이시아에 111대를 수출을 하는 등 자국개발의 대형무기체계로는 최초로 대규모의 해외수출실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K200은 ‘한국형 보병전투차(Korea Infantry Fighting Vehicle)’라고 불리긴 해도, 포탑 등 무장체계가 약한 편이어서 오히려 병력수송 장갑차(APC)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런 결과는 제한된 예산으로 충분한 대수를 확보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강력한 포탑을 장착하면, 그만큼 배치할 수 있는 대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당시 국방당국자들로서는 절대다수의 적 기갑전력에 대응하기 위하여 수량 확보에 초점을 두었다는 말이다.


K200 한국형 보병전투차. 국산 장갑차 시대를 열었으나, 
전투장갑차라고 불리기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사진: 두산 DST>

 

 

21세기 한국군의 보병전투장갑차

최근에 들어 우리 군은 자주국방과 선진국방을 위한 노력으로 무기체계의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혁신은 장갑차 분야에서도 등장했다. 바로 K21 차기보병전투장갑차(Next Infantry Fighting Vehicle)이다. K-21은 2009년 6월 29일 국방과학연구소의 종합시험장에서 지축을 흔들면서 등장했다. K21은 전투중량 25톤급에 탑승인원은 12명으로, 승무원 3명과 보병분대원 9명을 탑승시킬 수 있다. K21은 여러 면에서 K2 흑표 전차에 비하여 손색없는 차세대 명품무기로 주목받았다. 기존의 K200 KIFV와 비교하면 기동성, 화력, 방호능력이 삼위일체로 진화한 셈이다.

 

K21이 눈에 띄는 것은 웬만한 동급 장갑차들도 주눅이 들 만한 화력이다. K21은 분당 300발의 발사되는 40mm 자동포와 ‘사격 후 망각’ 방식의 제3세대 대전차유도무기를 갖추게 된다. 이로써 적 장갑차와 전차는 물론이고 근접신관을 갖춘 복합기능탄을 사용하면 적의 헬기까지 파괴할 수 있는 화력을 보유한 셈이다. K21은 최대 70km의 거침없는 기동력으로 전차와 동등한 주행능력과 지형극복능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수상부양장치를 장착하여 급속도하작전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K21은 수상부양이 가능하게 설계되었다. <사진: 국방부>

K21 한국군 차기보병전투장갑차. <사진: 두산 DST>

 

 

이외에도 K-21은 주야간 정밀조준장치, 위협자동탐지적외선 센서, 피아탐지장치 등을 장착하여 적을 먼저 보고 먼저 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또한 IT화 되고 있는 전장의 현실을 반영하여 차량간 정보체계, C4I 연동의 디지털통신체계를 갖추는 등 네트워크전(Network Centric Warfare)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K21은 전차에 맞먹는 성능을 가진 만큼, 가격도 전차에 맞먹는다. 그러나 K21은 무기체계 도입의 초기인 만큼 여러 가지 트러블이 존재하고 있다. 도하사고를 비롯하여 최근에는 설계결함까지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해외수출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는 시점에서 문제점들이 빠른 시일 내에 해결되기를 기대해본다.

 

한편 해외파병이 잦아지면서 우리 군에서는 차륜형장갑차에 대한 소요도 증가하고 있다. 이미 우리 군은 바라쿠다 장갑차를 도입했지만, 해외파병과 동시에 후방 부대의 기동성 강화를 위해서도 차륜형 장갑차의 필요성은 절실하다. 이에 따라 로템, 두산DST, 삼성테크윈 등에서는 새로운 차륜형 장갑차를 제시하면서 우리 군 기갑전력의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