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휴지통

현대사를 바꾸고 있는 소총- AK-47

AK-47

역사를 바꾸는 총은 무엇일까? 브라우닝 M2 기관총M16 소총, 글록 권총 등등 다양한 의견들이 있겠지만 현재에도 역사를 바꾸고 있는 소총이 하나 있다. 바로 AK-47이다. 1947년 등장한 AK-47 소총은 60년이 넘은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꾸준히 사용되고 있으며, 무려 1억 정이 넘게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냉전에서 소말리아 해적에 이르기까지 현대사의 크고 작은 분쟁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AK-47 소총이 함께 했다.

 

현대사의 분쟁에 빠지지 않는 총. AK-47.

 

 

돌격소총의 등장


AK-47의 등장은 제2차 세계대전의 독소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2년 말 소련군은 독일군의 최신형 돌격소총인 Mkb42를 처음으로 대하게 되었다. 소련군은 연발기능을 유지하면서도 따발총보다 사거리가 긴 ‘돌격소총’이란 종류에 눈독을 들였다. 독일의 Mkb42 돌격소총과 미군이 공급한 M1 카빈 소총을 놓고 고민하면서 어떤 것을 바탕으로 국산소총을 만들지 고민하고 있었다. 1945년 수다예프가 개발한 AS-44 소총이 시험적으로 채용되기도 했지만, 5kg이 넘는 무게 때문에 결국 전군에 보급되지는 못하였다.

 

여기서 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등장한다. 소련군 전차부대의 부사관이던 칼라시니코프는 1942년 전투에서 부상을 당한 이후에 기관단총의 설계안을 상부로 올리면서 주목을 받아 총기개발자로 임명되었다. 그가 개발한 AK-1 소총은 소련군 주력 자동소총의 후보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어 1946년 시험평가를 거쳤다. 내부 구조의 설계는 M1개런드를 참고하였다고 한다. 이후 AK-1의 문제점을 보완하여 등장한 것이 바로 AK-47(Автомат Калашникова[압토마트 칼라시니코바] 47)이다. AK-47 소총은 다른 후보 총기들과 치열한 경쟁 이후에 1949년 소련군의 제식 총기로 선정되었다.

 

독일군의 Mkb42 돌격소총. 이후의 모든 돌격소총에 막대한 영향을 준 총이다.

AK-47 이전에 소련군이 실험 배치한 AS-44소총. 너무 무거운 무게로 인하여 정식으로 채용되지 못했다.

 

 

AK-47 소총은 모두 80여 개의 부품으로 구성되는데, 그중에서 가동부품은 8개에 불과하다. 이렇게 구조가 간단하다 보니 생산 단가도 저렴하고 운용하기도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물론 총기의 정확성은 애초에 소련군이 요구한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정확성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실전에서 믿을 수 있는 총기를 당장 선정하자는 것이 소련군의 결정이었다. 이렇게 제식화가 결정된 AK-47 소총은 소련군뿐만 아니라 공산권 전체로 펴져 나가게 되었다. 심지어는 북한도 58식 보총(보병이 사용하는 총기라는 뜻)이란 명칭으로 AK-47을 1958년부터 자체 생산하기 시작했다.

 

AK-47 소총을 개발한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1949년의 사진.

북한은 이미 58년부터 AK-47을 도입, ‘58식 보총’이라는 이름으로 자체 생산했다.

 

 

역사를 쓰기 시작하다


AK-47 소총은 공산주의 정권을 지키고 확산시키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1960년대에 AK-47 소총은 제3세계 혁명의 아이콘이었다. 수많은 AK 소총들이 공산게릴라들에게 공급되어 새로운 공산정권의 수립을 위해 활용되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베트남이었다.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은 소련과 중국에서 생산된 AK-47 소총을 지원받아 남베트남군 및 미군과 싸웠다. M-16과 AK-47의 역사적인 대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이때이다.

 

한편 AK-47은 아랍 민족주의 군사활동을 선도해왔다. 이스라엘과 싸우는 아랍 국가들은 대부분 AK-47을 사용해왔고 이런 과정에서 이슬람 극렬분자 및 테러리스트들의 주 무장으로 AK-47이 공급되었다. 결국 1972년 뮌헨 올림픽 참사를 비롯하여 2008년 뭄바이 테러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테러사건에서 AK-47은 주역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 20여 년간 AK 소총은 발칸반도, 아프리카 등지에서 인종학살의 도구로 활용되었다.

 

AK-47은 제3세계 혁명의 아이콘이었다. 미군은 베트남전쟁에서 AK-47 소총의 위력을 실감한다.

AK 소총은 70년대 이후로는 이슬람 무장세력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사진은 2011년 5월 사망한 오사마 빈 라덴의 사격장면.

 

 

AK 소총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그 누구라도 1시간 만에 사격법을 숙지할 만큼 단순하다는 데 있다. 그래서 심지어는 아이들조차도 쏠 수 있는 총이라는 얘기까지 있는데, 실제로 아프리카의 소년병들은 8~9살의 나이부터 AK 소총을 들고 쏘는 법을 배운다고 한다. 게다가 간단한 구조로 인하여 별다른 정비가 없이 어떤 환경에서라도 반드시 발사된다는 장점으로 인하여, 모래먼지가 가득한 사막에서부터 금방 얼음이 어는 극지방까지 어느 지역에서도 선호되는 총기가 바로 AK-47이다.

 

최근 AK-47은 해적의 무기로 주목받고 있다. 얼마 전 종신형을 선고받은 소말리아 해적 모하메드 아라이도 AK-47 소총을 석해균 선장에게 발사하면서 언론의 시선을 한몸에 받기도 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해적들뿐만 아니라 해적을 막기 위해 배에 탑승하는 무장보안요원들도 AK 시리즈 소총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빈자와 약자의 선택 AK-47


AK-47 시리즈의 소총은 전 세계에 약 1억 정 이상이 생산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AK-47 시리즈 소총들은 사유재산권이 인정되지 않던 구소련에서 만들어져 특허권의 제약 없이 전 세계에서 그 설계도가 뿌려졌다. 따라서 어느 나라에서 얼마만큼 AK소총이 생산되고 있는지 정확히 알기도 어렵다. AK 소총은 그 간단한 구조로 인하여 아프간이나 파키스탄 등지에서는 심지어 대장간에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만들어지고 시중에 풀리다 보니 AK 소총은 그 가격도 매우 저렴한 편이다. 합법적인 시장에서는 중고가격이 500불 내외로 거래되고 있다. 냉전 후 물량이 넘쳐나던 시기에 아프리카의 암시장에서는 AK-47이 한 정당 6불 또는 닭 한 마리와 바꿔서도 구할 수 있는 지경이었다. 이러다 보니 AK 소총은 불법 총기 시장의 주요품목이 되기도 했다. 특히 총기 상인들에게는 현금처럼 통용되기도 했고, 총기의 나라 미국에서는 수많은 연쇄살인범이 선호하는 무기이기도 하다.

 

AK 소총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저렴하게 살 수 있고 손쉽게 훈련시킬 수 있어서 ‘빈자와 약자의 무기’로 명성이 높다.

AK-47이 사용하는 탄환인 7.62x39mm 탄.

 

 

AK-47 소총이 사용하는 탄환은 7.62x39mm 탄으로, 통상 ‘7.62mm 러시안’으로 불린다. 7.62mm 러시안에는 기본형인 M43 탄환 및  M67 탄환, 중국제 철심탄환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특히 M67탄은 내부를 비워놓음으로써 적군이 피격됐을 때 파편이 더욱 잘 퍼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살상력을 높인 것으로 유명하다. 7.62mm 러시안은 NATO에서 사용하는 7.62x51mm 탄(‘7.62mm NATO’로 구분함)과 비교하면 파괴력이 약하나, 현재 우리 군이나 미군의 주력인 5.56x45mm탄에 비하면 탄자의 무게도 8그램으로 2배 이상 무겁고 파괴력도 뛰어나지만, 500m의 사거리까지 정확히 사격할 수 없다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다. 결국 소련군도 미군처럼 탄환의 크기와 중량을 줄인 5.45x39mm탄을 채용하여, 새로운 탄환을 쓰는 AK-74 소총이 지금까지 러시아 등의 주력소총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AK-47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명중률이다. 해외의 모 다큐멘터리 채널에서는 AK-47 소총은 보통 200m에서 사람의 몸통을 제대로 맞추기도 어렵다는 방송을 내보내기도 했지만,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AK 소총에 익숙한 사수라면 200m에서 표적을 명중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AK 소총이 정밀하지 않다는 잘못된 상식은 미디어와 게임이 만들어낸 환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