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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하는곳

<천사와 악마> 그리고 <일루미나티>

화 <천사와 악마>를 보고 왔다.

 

(남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별 다섯 개를 주고 싶을 만큼 잘 만든 영화였다.

 

다만 한 가지 안타까운 건

원작 소설에서부터 유래된 오류들이

여전히 넘쳐나고 있다는 점...

 

특히 ‘일루미나티’와 관련한 대목들은 잘못투성이라

이번 기회에 잠깐, 사실을 짚어보고자 한다.

 

소설이나 영화를 보신 (또는 보실)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천사와 악마>

 

감독 : 론 하워드

연 : 톰 행크스, 이완 맥그리거

원작 : 댄 브라운 <Angels & Demons> (2000)

상영시간 : 138분


 

 

<줄거리>

유럽의 원자핵 연구소에서 강력한 에너지원이 되는 ‘반물질(Antimatter)'을 생성하는 실험도중 괴한이 침투해 이것을 훔쳐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한편 로마에서는 교황이 선종하여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려 하는데, 그 후보 추기경들이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알고보니 이것들은 모두 ‘일루미나티(Illuminati)'라는 비밀조직의 소행으로, 이들은 가톨릭 세력을 붕괴시키기 위해 교황을 살해하고 후보들을 납치하였고, 반물질을 이용해 로마 교황청을 폭파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하버드대 종교기호학 교수인 로버트 랭던(톰 행크스)은 사건 해결을 위해 바티칸에 도착하여 로마 유적 곳곳에 숨겨져 있는 일루미나티의 단서를 파헤치며 모험을 펼친다.

 

 

 

 

 

 

 

 

* 일루미나티의 앰비그램 *


앰비그램(Ambigram)이란 그냥 보나 거꾸로 보나 똑같은 모양의 그림글자를 말한다.

피살자의 몸에 이 앰비그램이 낙인찍힌 걸 보고,

랭던 교수는 일루미나티가 500년 동안 별러왔던 복수를 시작했음을 알게 된다.

 

 

 

<천사와 악마>에 따르면 일루미나티는 1500년대에 등장한 과학자들의 비밀결사 조직이라고 한다. 이들은 갈릴레오나 코페르니쿠스처럼, 당시의 신학적 세계관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로부터의 박해를 받아왔고, 지금까지 지하에 숨어 있다가 때가 되면 등장해 복수를 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에는 특히 ‘1668년의 정죄’라는 사건이 중요한 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1668년의 정죄> (La Purga of 1668)

1668년, 가톨릭 교회에서는 일루미나티 소속의 과학자 4명을 체포해 그들 가슴에 십자가 문양의 낙인을 찍고 교수형에 처했다. 그리고 그들의 사체를 길거리에 던져 사람들이 경각심을 갖게 했다. 일루미나티는 이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500년 만에 다시 나타난 것으로, 4명의 교황 후보들을 납치해 공개적인 장소에서 하나씩 ‘처형’해 나가는 것이 <천사와 악마>의 주된 스토리를 이룬다.  

 

 

 

                              

 

 

* 흙(Earth), 공기(Air), 불(Fire), 물(Water)의 앰비그램 *


영화 속에서 일루미나티는, 납치해 간 4명의 추기경 몸에

이 앰비그램들로 낙인을 찍어 죽임으로써 1668년에 대한 복수를 감행하려 한다.



 

 

모든 종류의 ‘팩션(fact + fiction)'이 그러하듯, <천사와 악마> 역시 그 속에 나오는 사실들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궁금해 하는 독자(관객)들이 많을 것이다. 해외 사이트를 뒤져보면 이 소설(영화)에 나오는 미술적 사실이나 과학적 근거들에 대한 오류를 밝히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외에도, <천사와 악마>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일루미나티에 관한 설명들 역시 대부분 잘못돼 있다는 것을 힘차게 외치고 싶다. 특히 다음의 두 가지는 몹시 중요하다.

 

 


- ‘1668년의 정죄’는 전혀 사실무근인, 가공의 이야기이다.

 

 

- 일루미나티는 과학자들의 모임도 아니었고, 

  

   1500년대부터 존재해 온 것도 아니다.


 

 

 

이 둘은 <천사와 악마>에서 일종의 대전제들이다. 독자(관객)들은 이 전제가 사실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야기 속으로 쉽게 빠져들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    



원작 소설가이자 영화의 총제작(Executive Producer)까지 맡았던 댄 브라운은 책 속에서 다음과 같은 ‘작가의 말’을 덧붙인 바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예술 작품과 건축물들에 대한 설명은 완전한 사실입니다. 


References to all works of art, tombs, tunnels, and architecture in Rome

are entirely factual (as are their exact locations)

 

 


(심지어 로마 성당들의 위치까지 정확히 표현해 놓았다는 자랑을... ㅋㅋ)




그리고 이러한 애매한 표현까지 덧붙였다.







일루미나티 형제단 역시 사실입니다.


The brotherhood of the Illuminati is also factual



 

 

 

이 표현만 얼핏 보면, 일루미나티에 대한 소설(영화) 속의 모든 설명이 사실이라는 주장처럼 들리지만, 영어 원문의 의미는 일루미나티라는 단체가 실존했다는 의미이지 소설(영화)의 내용이 사실이라는 게 아니다. 즉, 작가는 일루미나티라는 실제 이름을 빌어 완전한 허구의 이야기를 펼치면서도,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일부러 애매한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루미나티란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


거기에 대해 길게 잘난 척을 해 보려는 것이 이번 포스트의 주제이다.


16년간 프리메이슨과 음모이론을 연구해 온 '일루미나티의 달인'으로서


그 동안 혼자서 공부해 온 내용들을 쪼끔만 공개하련다.


    

 

 

 

 

  

일루미나티는 18세기 후반에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진, 한 비밀조직의 이름이다. 이들이 활동했던 시기는 매우 짧지만 그 족적과 여파는 너무나도 커서 지금까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특히 이들은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이 세계를 지배하려 한다'는 음모이론의 대명사가 되어있다. (이러한 세계지배의 음모론에는 주로 프리메이슨이 등장하는데, 일루미나티와 프리메이슨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일루미나티는 본래, 1776년 독일 바이에른 지방의 잉골슈타트(Ingolstadt) 대학교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이념서클이었다. ‘일루미나티’란 라틴어의 수동태로서 ’빛을 받은(illuminated)'이라는 말이다. 영어로는 '계몽된(enlightened)'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는데, 문법상 그 자체로 ‘계몽된 사람들’ 이라 해석가능하다. 즉 일루미나티는 당시 유행이었던 계몽주의 사상에 영향받은 사람들의 모임이었던 것이다.  


일루미나티를 창설한 사람은 잉골슈타트 대학의 '아담 바이스하우프트(Adam Weishaupt)'라는 젊은 교수였다. 그는 25세에 정교수로 부임해 27세 때에 법과대학장 자리에까지 오른, 촉망받는 인재였다. 바이스하우프트는 당시 유럽을 휩쓸던 계몽주의 사상에 심취해 '인간의 이성'으로 세계를 변화시키겠다는 목적으로 1776년 5월 1일 (28세), 동료 교수 및 학생들을 모아 이념서클 하나를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현재까지 모든 음모이론의 뿌리가 된 일루미나티라는 조직이다.   


 

 

                            

 

일루미나티의 창시자


아담 바이스하우프트 (1748-1811)












* 바이스하우프트 어록 *

 

 


인간은 악한 존재가 아니다.

 

임의로 만들어진 도덕률 때문에 그렇게 규정된 것이다.

 

인간이 사악하다고 정해진 것은 종교와 국가 때문이다.

 

잘못된 규정들이 인간을 왜곡시킨 것이다.

 

이제 이성이 인간의 종교가 되는 순간

 

그러한 문제들은 해결될 것이다.

 

 

...

 

 

우리는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그러므로 멤버 각자는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세상을 지배할 능력이 있다.

 

 

 

 

이러한 말들은 지금 시점에서 보면 평범한 이야기지만, 당시로서는 감히 생각조차 하기 힘든, 무시무시하고 과격한 주장들이었다. 종교(기독교)와 국가(정부) 때문에 잘못되어 온 지금까지의 역사를 '이성의 힘'으로 바로잡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니...  결국 기존 체제를 무너뜨리겠다는 얘기이다. 한 마디로 일루미나티는 새로운 체제변혁을 추구했던, 18세기의 최첨단 좌익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애초에 작은 학내 서클로 시작했던 이 모임은 점차 팽창하여 단기간에 급성장하였다. 거기에는 프리메이슨의 역할이 컸다. 일루미나티는 1777년 뮌헨 지부의 프리메이슨 일파가 되어, 당시 유럽 지식인 사회에서 인기있었던 프리메이슨의 네트워크를 통해 빠르게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이다. 역시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었던 신비주의 단체 프리메이슨은 보다 선명하고 화끈한 일루미나티에 매력을 느꼈고, 그들의 주장과 사상을 받아들여 빠르게 변모하기 시작했다.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를 구분하는 일도 쉽지 않게 되었고, '일루미나티화된 프리메이슨(Illuminated Freemasonry)'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후에 프랑스 혁명을 주도했던 미라보(Comte de Mirabeau)는 당시 상황에 대해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뮌헨의 프리메이슨 지부에 가보니

머리와 가슴이 있는 사람이 몇 명 있었다.

그들은 일루미나티라는 자신들의 비밀조직을 전파시키겠다는

확고한 결심이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

 * Jim Marrs, <Rule by Secrecy> (2000), p.238에서 재인용


 

 

 

당시는 미국 건국의 초창기이기도 했다.

건국의 아버지 가운데 한 사람인 토마스 제퍼슨(후에 3대 대통령이 됨)은

자신의 편지글 가운데에서 속에서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바이스하우프트는 열렬한 박애주의자 같아요"

Wishaupt seems to be an enthusiastic Philanthropist


 

 

                    


위 내용이 담겨있는 제퍼슨의 편지

* 본문 -> 여기 클릭!

 

 

이러한 자료들은 당시 일루미나티의 사상이 얼마나 각광받고 있었는지를 우리에게 말해준다. 독일의 역사가 클라우스 엡스타인은 <독일 보수주의의 탄생>이라는 논문에서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그에 따르면 18세기 후반 독일에서는 약 2,000~4,000명 정도의 일루미나티 단원들이 활동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거의 대부분 정부관료나 교육, 언론, 출판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엘리트들이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괴테나 헤르더, 쉴러 등의 유명인사들도 있었다. Klaus Epstein, <The Genesis of German Conservatism> (1966), pp.92-94

 

 


일루미나티는 무엇보다, 기독교에 대한 주요 반대세력이었다. '신(神)의 섭리'에서 '인간의 이성'으로 관심을 돌린 유럽의 지식인들이 일루미나티에 열광할수록 교회의 적개심도 커져만 갔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실려있는 설명을 잠시 읽어보자.

 

 

 

가톨릭 교회가 가지고 있던 정치적, 사회적 특권들은

계몽주의에 의해 위협받았는데,

특히 당시 확산된 요구들이 결합된

‘계몽주의적 전제주의’에 의해서였다.

형제애를 중시한 비밀단체인 프리메이슨과

이성주의를 중시한 비밀단체인 일루미나티에 의해 가르쳐진

‘형제애(Brotherhood)'는 교회 공동체적 생활에 라이벌로 등장했다.

오스트리아 작곡가 모차르트는 <마술피리>에서

교회 미사의 대안으로 프리메이슨을 찬양하기도 했다.

* <The New Encyclopaedia Britannica>, 15개정판, vol.26, p.891

 

 

 

 

이처럼 정부와 교회의 '공공의 적'으로 부상한 일루미나티를 그대로 둘 리 없었다.

1784년 6월, 바이에른 선제후는 일루미나티에 대한 금지령을 내렸고, 이듬해 3월부터는 단원들에 대한 검거가 시작됐다. 그리고 1787년에는 정부당국이 수집한 증거들을 묶어 일루미나티의 실체를 폭로하는 책자를 발간하기도 했다. 그 속에는 그들의 과격한 주장과 신입단원들에 대한 세뇌교육 내용, 조직운영 방침 등이 수록돼 있었다. (왠지 우리나라 유신시대의 좌익 검거장면들이 떠오른다는...) 그리고 그 해 8월, ‘만일 아직도 일루미나티 활동을 계속 하는 자들이 있다면 사형에 처하겠다’는 폭탄선언까지 떨어졌다.

 

그 결과 일루미나티는 소멸됐다. 학자들에 따르면 1790년경까지 독일은 물론 전 세계에서 완전히 종적을 감추게 되었다고 한다. (이 거대 운동의 주모자였던 바이스하우프트는 결국 교회로 되돌아가서 자신의 행동을 참회하다가 죽었다고 한다) * George Johnson, <Architects of Fear>, (1983), p.66

 

 

 

 


일루미나티는 이처럼,

채 15년도 안되는 짧은 시간 동안 활동하다 사라진,

작은 사건의 주인공일 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1789년, 유럽 사회를 송두리째 흔든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갑자기 달라진 세상에서 어리둥절하면서 살게 되었다. (생각해 보라. 나는 새도 떨어뜨리던 권력을 가졌던 왕이 하루 아침에 단두대에서 목이 잘려 사라졌고, 세계는 갑자기 '우리 것'이 되었다!) 사람들은 변화의 모습을 되짚어 보면서, 놀랍게도 이것은, 이전에 일루미나티가 주장했던 내용들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프랑스 혁명의 3대 슬로건으로 알고 있는 자유, 평등, 박애는 모두 프리메이슨의 모토였다. 특히 '박애 Fraternity'라는 용어는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의 단원들끼리 통하는 '형제애'를 뜻하는 말임을 주목하자.)

 

 

 

 

이때부터 슬슬

혁명의 배후에 비밀조직의 '음모'가 있었을지 모른다는 

이론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음모이론의 역사에서 1797년이라는 시점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바로 그 해에 초창기 음모이론을 확립시킨 두 권의 책이 동시에 출판되었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의 저명한 수학자이자 에딘버러 대학교의 자연과학교수이며, 에딘버러 왕립학회를 이끌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제3개정판의 저술가로 참여하기도 했던 존 로비슨(John Robison)이라는 학자가 <음모의 증거들 Proofs of a Conspiracy>이라는 책을 냈다. 그는 본래 프리메이슨 단원이었는데, 유럽의 각 지부들을 돌다가, 독일에서 소멸된 일루미나티가 여전히 생존하여 더 큰 음모를 꾸미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그들(일루미나티)의 교리가

프리메이슨 가운데로 퍼져나가 혼합되는 것을 보았고,

마침내 모든 종교체계를 뿌리 뽑고

유럽의 모든 정치권력을 쓰러뜨리려는 목적을 가진

연합체가 형성되는 것을 보았다


 I have observed these doctrines gradually diffusing and mixing

with all the different systems of Free Masonry;

till, at last,

AN ASSOCIATION HAS BEEN FORMED

for the express purpose of ROOTING OUT ALL THE RELIGIOUS ESTABLISHMENTS,

AND OVERTURNING ALL THE EXISTING GOVERNMENTS OF EUROPE.


 


그리고 나는 보았다.

프랑스 혁명의 주모자 대부분이

이 조직의 단원들이었음을,

그들은 조직의 규칙에 따라 초창기부터 선동을 시작했고

지도방침과 지원을 미리 얻어낸 뒤 움직였던 것이다.



And I have seen that

the most active leaders in the French Revolution were members of this Association,

and conducted their first movements according to its principles,

and by means of its instructions and assistance,

formerly requested and obtained:




...




그리고 나는 보았다,

이 연합체가 아직도 존재하는 것을.

아직도 비밀리에 활동하는 것을


And, lastly,

I have seen that this Association still exists,

still works in secret...



* John Robison, <Proofs of a Conspiracy> (1797) P.7




이 책의 제목인 <음모의 증거들>은 이처럼, 일루미나티가 죽지 않고 살아남아 프랑스 혁명을 일으켰다는 증거들과, 또 다른 곳에서 체제전복을 획책하고 있다는 증거들을 함께 이야기한다. <음모의 증거들>은 1년만에 4판이나 찍게 되는 그 해의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이듬해까지 불어, 독어, 네덜란드어 등으로 번역돼 전 세계에 알려졌다.



그리고 또 하나, 바렐(Augustin de Barruel)이라는 프랑스 신부가 1797년에 쓴 <자코뱅 회고록 Mémoires pour servir à l'histoire du Jacobinisme>이라는 책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총 4권짜리의 장서로, 처음에 불어로 출판되었다가 이후 독일, 영국, 미국, 폴란드,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지로 번역돼 선풍을 일으켰다. 여기에서 바렐 신부는 프랑스 혁명을 무신론자들과 음모집단에 의해 기독교체계가 무너진 사건으로 보았고, 그 중심에는 역시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이러한 음모는 현재(18세기 후반 당시), 미국대륙에도 전파되고 있다는 것이다.

 

 

 


역병이 바람에 실려 날아가듯, 

승리를 거둔 그들(일루미나티)의 군대는 의기양양하게

아메리카 대륙으로 날아가 전염을 시켰다.

그들의 사도들은 순진하고 부지런한 흑인들에게 이 교리들을 주입했고,

이미 산토도밍고와 과달루페(중남미의 주요 도시들)의 방대한 지역이

그들 소굴로 변했다.

그것은 북아메리카의 형제들에게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필라델피아와 보스턴은 이제 막 시작한 자신들의 새로운 체제가

그 거대한 도당들에게 밀려나가는 공포에 떨게 될 것이다.


* Vernon Stauffer, <New England and the Bavarian Illuminati>, (1918), p.226에서 재인용


 

 

 

아닌게 아니라 미국은 '프리메이슨이 세운 나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본디부터 그들의 사상이 유행하고 있던 곳이었다. 조지 워싱턴과 벤자민 플랭클린이 프리메이슨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었고, 존 핸콕, 사무엘 애덤스, 폴 리비어 등 유명한 정치지도자들 역시 열렬한 프리메이슨 단원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프리메이슨의 상징인 피라미드와 외눈문양을 미국의 상징으로 정했다고 하는데...)

 

 

 

                                   

  

* 1달러 지폐 뒷면에 그려진 미국 국새의 문양 *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의 세계정복 음모가 담긴 증거라는 소문의 근원!


(피라미드와 외눈은 모두 프리메이슨의 상징이다.

맨 아랫단에 보이는 로마숫자들은 1776이라는 뜻인데,

이것은 미국 독립의 해이기도 하지만 일루미나티의 창립년도를 뜻한다는...)

 

 

 

 

1798년 9월, 메릴랜드에 살고 있던 스나이더(G. W. Snyder)라는 목사는, 당시 퇴임 후 공직에서 물러난 전직 대통령 조지 워싱턴에게 <음모의 증거들> 한 권을 선물하면서, 동봉한 편지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미국에 있는 프리메이슨 지부들 가운데에도

일루미나티나 자코뱅당의 이념에 감염됐거나,

그들에게 협조하고 있는 곳들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


심각한 고민 끝에,

무시무시한 음모가 우리 지부를 오염시키는 것을 막는 것은

그 의장직을 맡고 있는 당신의 능력이라는 결론이 들었습니다.


* Sidney Hayden, <Washington and His Masonic Compeers>, (1866), p.180



 


조심스러운 말투이지만, 과연 미국 프리메이슨의 수장으로 작금의 사태에 어떤 생각을 하느냐를 따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조지 워싱턴은 뭐라고 답했을까?  

 

 

 

 


일루미나티의 사악하고 위험한 계획과 교리들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책은 아직 못 읽어보았는데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중략)


다만 한 가지, 당신의 실수를 정정해 드리자면,


내가 국내 프리메이슨 지부에서 의장직을 맡고 있다고 하셨는데,


사실 나는 어디에서도 그런 역할을 하고 있지 않으며,


지난 30년 동안 단 한번도 그래본 적 없습니다.

 

(실제로 워싱턴은 미국의 프리메이슨을 대표하는 인물이긴 하지만

공식적으로 의장직을 맡은 적은 없었다. - 역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나라의 어떠한 지부들도 일루미나티가 주장하는 원칙들로


변질되지 않았다고 봅니다.


(1798. 9. 25)




* 미 국무부 발행, <The Writings of George Washington from the Original Manuscript Sources>,

vol.36 (1941), pp.452-453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조지 워싱턴의 친필편지까지... 권위있는 문헌자료들 속에서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라는 이름이 자연스럽게 거론되고 있는 게 신기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러한 자료들을 통해 우리는, 이들이 18세기 이후 서구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는 사실과, 결국에는 음모의 비밀조직으로 여겨지게 된 사정까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제 사람들은

                   '음모이론'이라는 새로운 담론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그것은 '고도의 개연성'을 추구하는

                          일종의 '지적 유희'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각종 픽션과 팩션,

   영화와 게임 등에서

일루미나티와 음모이론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1975년 발표돼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일으킨

<일루미나투스!>라는 3부작 판타지 소설.

세계정복을 꿈꾸는 일루미나티의 음모를 그리고 있다.


 

 

 

 

<천사와 악마>는 종교와 과학이라는 양대 기둥의 충돌을 그리기 위해 일루미나티를 18세기의 정치적 비밀결사가 아닌, 500년 전부터 존재해 온 과학자들의 조직으로 변모시켰다. 그것은 고의였을까? 아니면 무지 때문이었을까?

  

나는 과감히, 댄 브라운이 소설을 쓸 때만 하더라도 이러한 사실들을 잘 몰랐다고 믿고 있다. 단지 '교회와 종교에 맞서 싸웠던 이들'이라 했을 때 사람들 머릿 속에는, 일루미나티라는 이름과 갈릴레오 같은 과학자들 이름이 동시에 떠오르는 바, 별 생각없이 이 둘을 하나로 엮어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프리메이슨이 근대의 과학발전에 기여한 바는 매우 크다. 그 설명은 다음 기회에...) 그리고 어쩌면, <천사와 악마>(2000) 이후 <다빈치 코드>(2003)를 거치면서 공부를 많이 하게 되어 자신의 오류를 뒤늦게 깨닫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천사와 악마> 영화는 소설에서 보다 확실히 오류가 적다. 소설은 '사실'에 관한 한, 거의 전부 헛소리라는... ^^ )

 

로버트 랭던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의 3탄은 '프리메이슨을 소재로 쓰고 있다'며 이미 오래전 부터 큰소리 뻥뻥치더니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제목은 <The Lost Symbol>이고, 본래 2006년에 나오기로 되어있었으나 계속 늦어졌고, 올해 9월에는 꼭 나오기로 했단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 숨겨진

 

리메이슨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부터 시작한다니

 

 

... 

 

 

그렇다면

 

일루미나티를 안 건드릴 수 없을텐데

 

 

...

 

 

 

  

그때에도 그것이

 

500년 전부터 존재해 온

 

과학자 그룹이라고 주장할지

 

궁금해진다.


출저 : 부기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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