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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하는곳

부고 레스폴

레스폴 할아버지가 죽었다. 94세.

1915년생이니 우리의 윤동주 시인보다 두살 위고, 오래 사셨다. 

 

지난주 내내 바빠 오늘에서야 그의 부고를 접하고 

늦었지만 여기에 그를 기록해 놓는다.

 

 

 

 

 

 

故 Les Paul

본명 Lester William Polsfuss

(1915. 6. 9  – 2009. 8. 13)

 

 

 

 

 

 

그는 '전자기타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타가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지고 있다.

 

 

 

 

 

 

이렇게 생긴 기타 많이 보셨죠?

미국의 깁슨(Gibson)사에서 제작되는 '레스폴'이라는 모델입니다.

레스폴 할아버지가 직접 개발한 작품입니다.

 

 

 

 

 

 

 

그는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독일-러시아 계통의 이주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여 하모니카, 벤조, 기타 등을 독학하고

13세 때쯤 준프로급 실력을 이루었다고 한다.

 

 

17세때 학교를 때려치고 프로세계에 입문, 

'뺀드형아들'을 따라다니며 전국을 돌며 연주생활을 시작했다.

 

 

1940년대에 그는 '솔리드바디' 기타의 개발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말 그대로, 공명통 없이 딱딱한 나무로 깎은 기타의 '몸체(solid body)'위에

'픽업(pick-up)'장치를 부착해 사운드를 전기적으로 증폭시키는 오늘날의 '전자기타' 를 말한다.

 

 

 

 

 

그는 이렇게 개발한 자신의 솔리드바디 기타를

1952년 깁슨사를 통해 최초로 선보였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세계최고 기타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는

'Gibson Les Paul'모델이다.

 

 

 

 

 

한창 하드록에 빠져있던 고등학교시절

삼삼오오 모여

깁슨 레스폴이 좋으냐 펜더 스트라토캐스터가 좋으냐

되지도 않는 논쟁을 벌이며

낄낄거리던 때가 생각난다.

 

 

 

 

 

 

 

그때 <월간팝송> 같은 잡지에 늘 실렸던 레드 제플린 사진...

 

 

 

나의 우상 지미페이지는

언제나 레스폴을 들고 있었다.

 

 

 

 

 

 

 

 

 

 

아아... 바이올린 활로 기타를 그어대던...

 

 

사진만 보고도 떨렸던 그 전율을 다시 느끼고 싶다...

 

 

 

 

 

 

 

 

레스폴의 이름은 이렇게, 록의 역사와 함께 한다.

1960년대 이른바 'British Invasion'당시부터,

세계 3대 기타리스트 운운하던 뮤지션들부터,

70년대 하드록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레스폴 기타가 등장한다.

 

 

 

 

세계 3대 기타리스트, 제프 벡 (1954)

 

 

 

 

 

 

내가 좋아하는 게리 무어도 항상 레스폴을 들고 있었다.

 

 

 

 

 

 

 

레스폴하면 빼놓을 수 없는 마니아,

건즈 앤 로지즈의 슬래쉬!

 

 

 

 

 

 

 

최근 <롤링스톤>지에 실린 그의 부고 첫 단락은

이와 관련된 모든 것을 말해준다.

 

 

 

 

지미 헨드릭스와 에릭 클랩톤에겐 미안하지만

지난 수요일에 94세 나이로 별세한 발명가이자 음악가인 레스폴이야말로

록 기타리스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심지어 그는 록커도 아니었지만...)

그는 뛰어난 연주실력 뿐 아니라

획기적인 스튜디오 창작기술과 자신의 이름을 딴 솔리드바디 기타로

록 음악사의 주요 인물이 되었다. 

이 기타는 에릭 클랩톤, 듀언 올맨, 지미 페이지, 에디 반 할렌 등의

전설적인 연주를 통해, 록의 핵심적인 요소로 유명해졌다.     

 

Mark Kemp  /  <Rolling Stone> 2009. 8. 13

 

 

 

 

 

 

 

 

 

 

인터넷으로 검색하다보니

할아버지의 재미있는 사진들도 몇 장 찾을 수 있었다.

 

 

 

 

 

 

2003년, 88회 생일파티

(그는 최근까지도 계속 기타를 치며 공연을 했던 '현역뮤지션'이었다!)

 

 

 

 

 

 

 

본 조비의 기타리스트, 리치 샘보라(Richie Sambora)와 함께...

 

 

 

 

 

 

 

 

2008년, ZZ TOP과 함께 했던 공연 (右)

(세상에... 전부 다 레스폴을 들고있어요!!!)

 

 

 

 

 

 

 

 

기타의 神, B.B. King 할아버지와 함께...

(비비킹이 10살 아래라는... ㅋㅋ...)

 

 

 

 

 

 

 

 

 

1987년, 뉴욕의 하드록 카페

72회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온 지미페이지의 가슴에 사인을 해주는...

 

 

 

 

 

 

 

 

 

폴 매카트니를 위해 '왼손잡이용 레스폴'을 만들어 주면서...

 

 

 

 

 

 

 

우리는 그의 이름을 그가 만든 기타를 통해서만 알고 있지만

사실 그는 초창기 로큰롤 시대에 아주아주 잘나가던 히트가수였다.

 

 

 

자신의 아내 Mary Ford와 함께 'Les Paul & Mary Ford'라는 듀엣을 결성해

How High the Moon (빌보드 싱글차트 1위), 

Bye Bye Blues, The World is Waiting for the Sunrise,

Voya Con Dias (빌보드 싱글차트 1위) 등의 히트곡을 발표했다.

 

 

 

Les Paul & Mary Ford

두 사람은 1945년에 만나 1949년에 결혼했고, 1964년에 이혼했다.

(메리는 1977년에 사망함)

 

 

 

 

 

그리고, 레스폴과 관련해서 또하나 빼놓을 수 없는 기록이 있다.

그가 바로 '멀티 트랙 레코딩'의 창시자라는 사실!

 

 

 

 

멀티 트랙 레코딩이란

각각의 트랙에 각기 다른 소리를 별도로 녹음하고

(예를 들면 사람 목소리, 기타 소리, 드럼 소리 등등)

나중에 이 소리들을 '믹싱'해서 완제품을 얻는 녹음 기술을 말한다.

 

 

현대 스튜디오 녹음의 기초가 되는 이 획기적인 기술 역시

레스폴에 의해 개발된 것이다.

 

 

 

 

 

스튜디오 엔지니어로 활약하던 젊은 시절 레스폴

 

 

 

 

 

 

 

 

 

1940년대 후반의 레스폴

자신이 개발 중인 스튜디오에서,

자신이 개발 중인 기타를 들고...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내겐

 

레스폴이야말로 'American Dream'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가난한 이민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자신만의 꿈을 키웠고,

 

요행이나 인맥이 아닌, 꾸준한 노력으로

 

결국 대성공을 거두었고,

 

부와 명예를 움켜쥔 가운데에서도

 

변하지 않고 여전히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편안하게 살았다.

 

 

 

 

이것은 마릴린 먼로도, 마이클 잭슨도 못 이룬 일이고

 

빌 게이츠도, 조지 부시도 부러워 할 일이다.

 

 

 

 

 

 

 

 

 

5명의 자녀와 5명의 손주들,

 

그리고 5명의 증손주들을 낳은

 

94세의 할아버지가 갔다.

 

 

 

 

 

나는 그를 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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