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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하는곳

뒤러와 코뿔소

뒤러라는 사람이 있다.

유명한 화가이자 판화가, 그리고

'독일 르네상스 회화의 완성자'라고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알브레히트 뒤러 (Albrecht Dürer, 1471~1528) / 자화상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는 다음 설명으로 대번에 알 수 있다. 서양미술사가 노성두님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유로화로 통일되었지만,

이전의 독일 마르크 화폐에는

뒤러의 작품이나 그의 스타일이 거의 싹쓸이를 했다.

조금 과장을 한다면,

독일 사람들은 미켈란젤로에다 피카소를 덤으로 끼워서 준다고 해도

자기네들 국민예술가인 뒤러와 바꾸지 않을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미켈란젤로는 황제 카를 5세가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을 하나만 이야기해보라고 했더니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은 뒤러입니다. 저한테 황제 자리를 준다면 당장 도망치겠지만...”

 

미켈란젤로가 황제자리도 마다하면서 꼭 되고 싶었다는 뒤러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뒤러가 그린, 친구 히에로니무스 홀츠슈어(Hieronymus Holzschuher)의 초상화 (1526)

우리 때에는 미술교과서에 이 그림이 실려있었다.

새 학년에 올라가 새 교과서를 받고 뒤적이던 중,

이 그림을 처음 보고 느꼈던 충격이 지금도 기억난다

(너무 잘 그리지 않았냐? 특히 저 눈매...) 

 

 

 

뒤러는 1471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쭉 활동했다. 뉘른베르크는 그의 도시다.) 자수성가한 금세공사 아버지 밑에서 일찍부터 세공일을 시작하였고, 당시 인기를 얻기 시작한 목판기술을 익힌 후, 자신의 공방을 차리고 목판화와 동판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회화든 판화든 뭐든 잘 그려서 고객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뒤러의 작품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유명한 것은 이것 아니겠는가? <기도하는 손>

 

 

 

그는 초상화나 풍경화에도 재간이 남달랐지만, 동물그림도 잘 그렸다. 다른 어떤 화가들보다 동물의 모습을 유난히 치밀하게 관찰하였고 작품으로 많이 남겼다. 여행길에서 신기한 동물을 만나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가 그려대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표작 <토끼> (1502)

수채화로 급하게 그린 그림인데, 너무나 실감이 나서 만져보고 싶어진다.

 

 

 

베네치아 여행도중 그린 <바닷게> (1495)

내륙 출신답게 그는 '게'라는 동물을 처음 보고 매우 신기해 했다고 한다.

 

 

뒤러는 이탈리아를 1494년과 1505년에 두 번 방문했다. 그리고 그곳 화가들로부터 원근법과 인체비례이론 등 당시 최고의 첨단 미술이론을 배워왔다. 그것이 바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가 알프스를 넘어 북유럽에 이르게 된 배경이다. 뒤러의 이탈리아 유학이 없었더라면 북유럽 르네상스는 개화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그의 작품은 바로 이것이다.

동판화 <멜랑콜리아 I (Melencolia I)> (1514)  

 

 

'울적한 기분'을 뜻하는 '멜랑콜리'... 왼쪽 위 박쥐모양의 날개에 적혀있는 글자에서 유래한 제목이다. 그러고 보니 이 그림의 주인공은 울적함에 잠겨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다.  날개달린 천사의 모습을 한 그녀와 옆에 앉은 아기의 정체는 무엇이고, 주변에 널려있는 각종 소품과 연장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전문가들의 해석이 실로 분분하다. 이 그림은 연금술과 기하학, 점성술 등이 어우러진 서양 신비주의의 하일라이트라 할 수 있다. (프리메이슨에 열광하는 내가 이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어찌 아니 가슴이 뛰었겠는가?)

 

벽에 붙은 '마방진'도 재미있다. 네 숫자를, 가로, 세로, 대각선 어느 방향으로 더해도 그 합이 똑같은 마법의 숫자판이다.

 

 

 

 

 

 

 

원근법을 기계적으로 계산해 내는 모습을 그린 판화.

사실 그는 뛰어난 미술이론가이기도 하였다.

광학장치를 이용한 원근법은 그의 특기 가운데 하나.

 

 

 

 

 

 

 

 

 

 

 

대천재 알브레히트 뒤러와 관련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는

이른바 '가짜 코뿔소 사건'이다.

 

 

그가 만든 1515년의 목판화 <철갑코뿔소>는

아마 서양미술사 전체를 통틀어  

최고 해프닝의 주인공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바로 이 녀석이다. <철갑코뿔소> (1515)

 

 

 

 

 

 

 

 

이런 말이 있다.

"역사는 1515년을 코뿔소의 해로 기억한다"

 

 

 

 

 

 

 

실제로 1515년에 코뿔소와 관련된 대단한 사건이 있었다.

1515년 5월 20일, 포루투갈의 수도 리스본 항에 코뿔소가 상륙했다.

인도의 구자라트왕국에서 잡아서 보내진 선물이었다.

 

사람들은 이 신기한 동물을 처음 보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아마 우리가 '용'을 실제로 보면 그러겠지? ㅋㅋ)

자연이 선사한 초유의 기적을 보았노라고 난리법석이었다.

이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국에 퍼져

포르투갈 전체는 코뿔소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 천지가 되었다.

 

1515년 6월 3일, 일요일

포르투갈의 왕 마누엘 1세는 이 동물을 사람들에게 공개하기로 결심했다.

그것도 놀라운 이벤트와 함께... 바로 '코끼리와의 대결'이었다.

 

 

 

 

고대 로마시대 역사가 플리니우스는 <박물지>라는 책에서

코뿔소와 코끼리는 날때부터 앙숙이요, 철천지 원수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고,

코뿔소와 코끼리의 싸움을 보고 싶어했던 것이다.

 

 

앙브로즈 파레가 그린 <코끼리와 코뿔소의 싸움> (1582)

 

 

 

 

 

드디어

수많은 인파 속에서 대결이 펼쳐졌다.

그런데 싸움은 별볼일없이 끝났다.

시작부터 코끼리가 꼬리를 내리고 달아나 버렸던 것이다.

며칠 동안 날밤을 새워 기다렸던 구경꾼들에게는 시시한 경기가 돼버렸지만

코뿔소에 대한 명성은 더욱 치솟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부터

'코뿔소 그림'이 유럽 전역에 유통되기 시작했다.

 

디카도 없고, UCC 동영상도 없던 시절

코뿔소를 보고 감동한 사람, 혹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게 된 사람들이

너도나도 코뿔소 그림을 찾았고

싸구려 화가들의 싸구려 복제화들이 온동네 판을 쳤다.

(거의 대부분 소문만 듣고 그린 상상화였다는 사실!)

 

 

피렌체의 화가 조반니 쟈코보 펜니가 그린 <철갑코뿔소> (1515)

 

 

 

 

 

화가들(특히 판화가들)이 개나소나 코뿔소를 그려 돈을 버는데

당시 최고의 인기작가였던 뒤러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소문으로만 듣고 귀동냥으로만 얻은 정보들을 모아

위의 작품 <철갑코뿔소>(1515)를 완성했다.

그림 윗부분 씌어진 글의 내용은 이러하다.

 

 

"구주 탄생 1515년에

동물이 한마리 산채로 인도를 떠나서 포르투갈에 도착했다.

포르투갈의 왕 엠마누엘에게 바쳐진 것이다.

동물의 이름은 리노케로스. 나는 이 동물의 생김새를 그렸다.

동물의 색깔은 얼룩반점으로 뒤덮인 바다거북과 같고,

온몸이 두꺼운 각질에 뒤덮여 있고,

크기는 코끼리에 비길 만하다.

...

이 동물은 온몸이 철갑을 두른 것처럼 단단히 무장되어 있어

도무지 공격을 해 볼 도리가 없다."

 

 

 

  세상에... 코뿔소라고는 본 적도 없는 주제에

색깔은 무슨 바다거북 같고

크기는 무슨 코끼리만하다고 거짓말을 하는가?

 

더구나

갑옷을 입고 있다니?!

 

...

 

이처럼 자신있게 설명을 덧붙였으니

사람들은 뒤러가 그린 그림을 진실이라고 믿었다.

훗날 인도의 진짜 코뿔소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에도

뒤러의 그림이 맞다고 우기던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튼

그때부터 뒤러의 코뿔소는 하나의 '교범'이 되었다.

도자기나 식기접시에도 뒤러의 코뿔소가 등장했다.

청동이나 대리석을 소재로 뒤러의 코뿔소를 모조한 작품들도 나왔다.

벽걸이나 양탄자의 그림으로도 뒤러의 코뿔소는 각광받았다.

 

여기 저기 모든 코뿔소들은

남산 위의 저 소나무처럼 철갑을 두르고 있었다.

 

 

마이세너 식기 접시에 그림장식으로 등장한 철갑코뿔소
 
 


 

이탈리아 피사 대성당의 청동문(1602)에도 철갑코뿔소가 부조로 새겨져 있다. 

 
 
 
 
 
 
 
 
심지어
 
불과 20세기 초엽까지
 
뒤러의 이 그림이
 
유럽의 백과사전과 생물교과서에
 
'코뿔소' 라고 실렸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스캔들 아닌가?
 
 
 
 
 
 
 
 
 
 
 
유명한 일화의 주인공 뒤러의 코뿔소...
하지만 미술사에 길이 남을 걸작임에는 틀림없다.
 

 
요샌 한 이태리 와인에도 이 그림이 붙어있습니다.
 
 
 
 
 
 
 
 
<후기>
 
화제의 인도산 코뿔소는 그 뒤로 어떻게 됐을까?
 
 
마누엘 왕은 이 신기한 동물을 교황청에 선물하기로 하였다.
 
 
1515년 12월,
 
각종 보석과 함께 화려하게 치장된 코뿔소를 실은 배가 리스본을 떠났다.
 
 
 
 
그런데
 
긴 항해를 마치고 마침내
 
이탈리아의 해안선이 눈앞에 나타난 시점에서
 
갑자기 폭풍우가 불어닥쳐 어이없이 배가 난파됐고
 
 
 
코뿔소는 항구가 눈앞에 뻔히 보이는 지점에서 수장되었다.
 
 
 
1516년 1월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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