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을 하는곳

밥 말리, 'No Woman No Cry'


 
 
 
 
지난 자료들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스크랩북을 한권 찾았다. 1999년에 <시네21>에 연재됐던 '20세기 팝아이콘' 시리즈였다. 뒤숭숭한 세기말을 맞아 지난 한 세기 동안 세계 대중문화에 큰 족적을 남겼던 인물 50명을 소개하였던 <시네21>의 주간 기획물이었다. 당시 나는 대중문화에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착각 속에 이런 류의 잡지들을 열심히 정기구독하고 있었던 듯하다. 미셸푸코에서 주윤발까지 나름대로 객관적인 기준으로 엄선된 아이콘들이 한장한장 정성껏 오려져 스크랩되어 있었다.   
 
1999년 8월 3일자에 실린 29번째 주인공은 밥 말리(Bob Marley)였다. 신현준님의 글이 너무 좋아 재정리하기로 하였다. 주간지 한 페이지를 빼곡히 채운 분량의 원고를 독수리타법으로 온전히 옮겨놓을 자신은 없고... 궁리 끝에 '아르미'라는 문자인식 프로그램을 구해 문서스캐닝을 해보았다.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떠졌다. 편리하고 놀라웠다. 디지털 세상에서 자료정리는 이렇게 되는구나....      
    
 
스크랩의 원본이다. 이제 이 종이는 냉정하게, 내일 아침 우리 아파트 재활용 분리수거장으로 갈 것이다. 문서파일로 저장된 신현준님의 원고는 바로 아래에 붙여놓았다. 가히 숙독할 만하다.  
 
 
 
 
 
'흑인 왕의 음악'의 제왕
 
 
"밀라노에서 교황보다 많은 군중을 모음. 7명의 여자로부터 11명의 자녀를 낳음. 3천만달러의 유산을 남김. '새로운 시편'을 씀. 36살에 암(정확히는 멜라노마)으로 요절." 한 인터넷 사이트 어떤 인물 소개 문구다. 이 인물은 체 게바라와 더불어 '저개발국' 출신으로 20세기 대중문화에 영향을 미친 드문 존재다. 게다가 '돈' 하고는 거리가 있는 게바라와 달리 그는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그것도 시원찮은 자국 화폐가 아니라 경화(硬貨)로.
 
그는 자메이카 출신의 '국제적 팝스타'이자 '영적 지도자'인 밥 말리다. 그의 이름은 레게(reggae)라는 이름의 음악과 찰떡처럼 달라붙어 있다. 자메이카가 어떤 곳인가. 그림 같은 백사장과 파란 하늘이 펼쳐진 카리브의 해변이 전부는 아니다. 수도 킹스턴에 접어들면 흑인(정확히 말하면 애프로캐러비언)들의 지저분한 빈민굴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말리가 태어난 곳도 해변이 아니라 악명 높은 게토지역 트렌치타운이었다. '중년 백인'의 아버지와 '십대 흑인' 어머니가 그를 만든 곳이 백사장이었는지는 몰라도.
 
자메이카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직후인 1963년 피터 토시, 버니 리빙스턴과 더불어 밴드 웨일러스를 이끌던 그가 국제적으로 뜨기 시작한 것은 1972년 아일랜드 레코드와 계약하면서부터다. '플랜테이션 농장주의 아들'인 영국인 크리스 블랙웰의 노회한 수완이 말리의 재능 및 카리스마와 결합하자 수많은 히트곡이 나왔고, 이들 대부분은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말리는 자신의 음악이 "빈민굴의 록" (Trenchtown Rock)이자 "반란의 음악"(rebel music)임을 선포하고, "네 권리를 위해 일어나"(Get up, Stand up)라고 선동했다. 메시지가 촌스럽게 마냥 직접적이지는 않았는데, <작은 도끼(Small axe)>는 제국주의 억압자들에 대한 제3세계 민중의 울분을 '도끼로 나무를 쓰러뜨리는' 것에 비유했고, <버팔로 병사>에서는 '비슷한 처지이면서 인디언을 살해해야 하는 흑인 병사의 심정'을 아이러니하게 그렸다. 이 곡들에는 싱코페이션이 걸려 비틀대듯 쿵짝쿵짝거리는 경쾌한 레게 리듬이 있었다.
 
1974년 에릭 클랩턴이 웨일러스의 곡 <보안관을 쐈지 (I Shot the Sherif)>를 불러 히트시키고, 
1년 뒤에는 <여인이여 울음을 그쳐요(No Woman No Cry)>가 최초의 국제적 히트곡이 되면서 
'혁명가 밥 말리' 의 선전은 절정에 달했다. 이 '혁명' 은 앨범 제목이기도 한 '라스타 혁명' 혹은 라스타주의라고 불렸다.

라스타주의란 자메이카 흑인의 아프리카적 뿌리가 그들의 억압자인 서양의 기독교문명과 기묘하게 뒤섞여 만들어진 토속 신앙이자 컬트종교이다. 그래서 에티오피아 황제를 숭배하는 신앙에 바빌론, 자이온, 아마겟돈, 엑소더스 같은 성경 용어가 등장한다. 간자(ganja)라고 부르는 마리화나를 '지혜의 풀'이라면서 즐겨 피우는 것, 그리고 신체발부를 절단할 수 없다는 교리 때문에 긴 머리를 칭칭 딴 헤어스타일(이른바 드레드록)을 하는 것도 라스타주의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이다. 그리고 레게는
라스타주의의 사운드트랙이자 '흑인 왕의 음악'이었다.
 
라스타주의는 1970년대 중반, 그러니까 좋은 시절이 다 지나고 경기침체와 사회불안이 세계를 뒤덮을 무렵 대안적 사상으로 주목받았다. 정치적 행동주의든, 은둔적 유토피아주의든 '1960년대의 잔치' 가 끝나고 파리만 날리던 시점에서 라스타주의는 흑인운동의 범세계적 이데올로기가 되었고, 밥 말리는 행동주의와 유토피아주의 모두를 체현한 인물이 되었다. 1978년에는 그간의 인도주의적 업적을 인정받아 '5억 아프리카인을 대표하여' UN 평화메달을 수상했다. 같은 해에 자메이카로 돌아와 암살 위협을 받으면서도 '사랑과 평화의 콘서트'를 개최하여 게토들 사이의 적대행위를 종식할 것을 호소했다. 1980년에는 집바브웨 독립 경축행사에 헤드라이너로 초대되어 생애에서 가장 영광스런 순간을 맞이했다. 그리고 이듬해 신화로 길이 남는 인물의 공통조건인 '요절' 로 세상과 하직했다.

그런데 '여인이여 울음을 그쳐요' 라는 뜻으로 알고 있던 <No Woman No Cry>가 국내 해적판 에는 '울지 않는 여자는 없어요'라고 번역돼 있다. 모 라디오 방송사의 '노장' DJ는 "여자가 없으면 울음도 없다"고 멘트한 일도 있다. 내가 틀린 건가. 그럴 수도 있지 뭐.
 
                                                                                                 신현준 (대중음악평론가)
 
 
(연보)
 
- 1945년 2월. 군인인 백인 아버지와 자메이카인 어머니 사이에서
   로버트 네스타 말리로 출생하여 트렌치타운에서 성장
- 1963. 피터 토시, 버니 리빙스턴과 '웨일링 웨일러스' 결성
- 1971. 인디 음반회사 '터프 공' 설립
- 1973. 1집 <캐치 어 파이어>, 2집 <버닝> 발표
   피터 토시와 버니 리빙스턴 웨일러스 탈퇴      
   밥의 아내 리타와 여성 배킹 보컬 트리오 아이 스리스 가입
   그룹명 '밥 말리 앤 더 웨일러스'로 바꿈
- 1974. 에릭 클랩턴 <나는 보안관을 쐈다> 미국 차트 1위 
- 1975. <여인이여 울음을 그쳐요> 국제적 히트
- 1976. 자택에서 암살자에게 부상당함 
- 1977. <엑소더스> 발표 
- 1978. 자메이카 '사랑과 평화의 콘서트'를 통해 정국에 화해 분위기를 조성
   UN으로부터 평화메달 수여. 라스타주의의 고향 에티오피아 방문
- 1980. 미국 순회공연 도중 무대 위에서 쓰러짐 
- 1981. 마이애미에서 암으로 사망
 
 
 
 
 
 

이쯤해서 <No Woman No Cry>를 안 들어볼 수 없지 않은가?
(플레이버튼을 클릭하자, 볼륨을 좀 키우고...)
 
 
 
 
 
No, woman, no cry

No, woman, no cry ..

 

여인이여 울지 말아요..


Said - said - said

I remember when we used to sit in the government yard in Trenchtown
Oba - observing the Hypocrites as they would mingle with the good people we meet

Good friends we have, oh, good friends we've lost along the way

 

트렌치타운 국회 앞뜰에 앉아 있던 때가 기억나네요
그때 우리는 선한 사람들 속에 섞여 있던 위선자들을 가려내고 있었죠

긴 투쟁 동안 우리는 좋은 친구들을 얻었고, 또 많은 벗들을 잃었죠

 

In this great future, you can't forget your past
So dry your tears, I say.

 

위대한 미래, 당신은 지난 날들을 잊지 못할 거예요
이제 눈물을 닦으세요


No, woman, no cry
Little darling, Don't shed no tears
No, woman, no cry


여인이여 울지 말아요
여인이여 울음을 그쳐요
어여쁜 소녀여, 눈물을 거두어요

 


Said - said - said

I remember when we used to sit in the government yard in Trenchtown

And then Georgie would make the fire lights as it was logwood burning through the nights

Then we would cook cornmeal porridge of which I'll share with you

 

트렌치타운 국회 앞뜰에 앉아 있던 때를 기억해요

그때 조지는 밤새도록 통나무를 태워 불을 피웠지요

우리는 옥수수죽을 끓여 함께 나눠먹었구요

 

My feet is my only carriage
So I've got to push on through

But while I'm gone, I mean

Everything's gonna be all right...

 

두 발은 나의 유일한 운송 수단이예요
그래서 나는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해요

내가 죽더라도

모든 것은 잘 될 거예요...

 

 
 
 
본래 밥 말리가 무슨 뜻으로 노래를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언제나 이 곡을 하나의 '유언'으로 해석한다. 오랜 투쟁 끝에 작은 승리를 거두고, 앞으로의 더 많은 일들을 뒤로 한 채 눈을 감아야 하는 어느 투사의 임종이 떠오른다. 최루탄 연기 속에 돌과 화염병이 춤을 추던 시대를 겪었던 경험 때문일 것이다. 

 

 

밥 말리는 자메이카 흑인의 토속신앙인 '라스타파리아니즘(Rastafarianism)'의 투사였다.

이 신앙은 에티오피아의 황제였던 ‘하일레 셀라시에’를 '라스 타파리(Ras Tafari)'라는 이름의, 일종의 신으로 섬긴다. (공연사진을 보라. 밥 말리 뒤에 걸어놓은 셀라시에 황제의 모습이 보인다)

 

자메이카와 레게의 상징처럼 돼있는 드레드록(dreadlocks) 머리와 녹색(에티오피아), 빨간색(피와 형제), 노란색(태양), 검은색(피부색)의 모자 등도 모두 심오한 신앙의 산물이다.

 

결국 레게는 라스타파리의 찬송가에 불과하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조선의 민족주의를 품고 사는 나는 오늘도 <No Woman No Cry>를 들으며 눈물이 글썽글썽해지고 있다. 이것이 음악의 힘이요, 대중문화의 위력이 아닐까?

 

'생각을 하는곳'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무라이게'를 찾아서...  (0) 2011.10.23
1967, 사랑의 여름  (0) 2011.10.23
이카의 돌  (0) 2011.10.23
사람얼굴이 나타났어요!  (0) 2011.10.23
시리우스별의 미스터리  (0) 2011.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