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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하는곳

'사무라이게'를 찾아서...

80년대의 대표적인 과학서적인 <코스모스>를 보면,

일본 사무라이의 얼굴을 닮은 특이한 '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바로 이 게다.  

 

* <코스모스>,  p.57 에 실린 사진

(칼 세이건 지음, 서광운 옮김, 학원사, 1981)   

 

 

허름한 화질이었지만, 학창시절 이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니 어떻게... 게의 등딱지에 저런 모습이 찍힐 수 있을까?"

눈을 부릅뜨고 양미간을 잔뜩 찌푸린, 화난 사무라이의 얼굴!

주먹코와 양 볼, 앙다문 입가에 흐르는 선까지 그대로... 보면 볼수록 신기하기만 했다. 

 

 

<코스모스>에서는 이 게에 관한 전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것은 일본 봉건시대에 어느 전쟁으로 몰살당한 사무라이들과 관련된 것이라고 한다. 바다에서 죽은 사무라이들의 원혼이 게의 등판에 찍히게 되었고, 이후 사람들은 이 게가 잡히면 먹지않고 놓아주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인 칼 세이건(Carl Sagan)은 이러한 신기한 무늬가 나타나게 된 '진화의 원리'를 과학적으로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는데, 이미 사진 한 장에 넋이 나간 나는 그러한 설명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오로지 저 게, 저 게를 찾아야 한다는 욕망에 불타올랐다. 고등학교 1학년 땐가, 2학년 때의 일이다....

 

 

 

 

 

 

세월이 흘러...

 

 

 

'사무라이게'라고 나름대로 이름 붙였던 이 게에 관한 실체 추적을 해보고 싶어졌다.

 

다행히 요즘은 인터넷이 잘 발달돼 있어 

약간의 센스와 시간, 집요함만 있으면 방 안에서도 충분한 자료를 찾을 수 있다.

 

나름대로 긴 시간 땀흘리며 찾았던 자료들을 여기 자신있게 모아본다.  

 

 

 

 

 

기대하시라!

 

 

신비로운 이 게의 비밀을~

 

 

 

 

 

1. 게의 정체

 

문제의 게는 정식학명이 'Dorippe Japonica'라는 놈으로,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이 원산지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만 잡히는 것은 아니고 중국북부, 베트남, 심지어 한반도 등 동아시아 지역에 넓게 분포한다고 한다. 수심10-30m 정도의 바닷속에 살기 때문에 해안에서는 찾을 수 없고 저인망 등에 가끔 걸리는, 흔하지 않은 종류의 게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이 놈을 '헤이케가니(平家蟹)'라고 부르는데, 직역하면 '평(平)씨 집안의 게'라는 뜻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그것은 앞에서도 잠깐 소개됐던, 사무라이의 전설과 관련이 있다. 

 

 

 

 

2. 게의 전설

 

1185년 일본.

당시 전국은 '겐지(源氏)'와 '헤이지(平氏)'라는 두 무사 가문이 대규모의 세력다툼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원평합전(源平合戰,1180-1185)'이라고도 불리는 이 전쟁은 일본 역사를 그 이전과 이후로 구분짓는 매우 중요한 사건 가운데 하나이다.

그 당시의 일본천황은 '안토쿠(安德)'라는 겨우 8살 된 어린아이로, '헤이케(平家)' 그러니까 평씨네 집안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헤이케는 천황을 등에 업은 기득권 세력, 겐지가문은 이에 도전하는 신흥세력이었던 것이다. 이 두 세력은 1185년 3월 24일, '단노우라(壇の浦, 지금의 시모노세키)'라는 바닷가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이게 된다.

결과는 헤이케의 참패... 군대는 전멸당하였고, 안토쿠 천황은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져 자결하였다. 승리한 겐지가문은 일본 최초의 무사정권인 '가마쿠라막부(鎌倉幕府)'를 세워 전국을 지배하게 되는데... 바야흐로 일본의 역사가 '헤이안시대'를 끝내고 '막부시대'로 진입하는 순간이다.

 

* 헤이케의 흥미진진한 역사는 <헤이케이야기(平家物語)>같은 고전문학으로 재탄생되기도 하였다. 관심있는 분들은 국내에 번역된 <헤이케이야기 1,2> (오찬욱 역, 문학과 지성사, 2006)를 읽어보시기 바란다.  

 

 


 

나는 솔직히 그 구구절절한 역사에는 별로 관심없다.

그저 내가 관심있는 건...

 

그때 물속에 빠져 죽었던 사무라이들의 얼굴이...

 

 

게껍질에 다시 나타났다는 것이다!!!

 

....

 

 

 

 

3. 게의 기록

 

'헤이케 게'에 관련된 기록이나 그림들은 여기저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754년에 발행된 5권짜리 백과사전인 <일본산해명물도회 (日本山海名物圖會)>3권 중에서...

클릭해서 큰 그림으로 볼 것!

오른쪽 끝에 설명이 씌여있고 , 왼쪽에는 게 그림이 그려져 있다.  

 

 

 

 

'우키요에(浮世繪, 일본 특유의 목판화양식)' 작품 가운데에서도 이 게를 많이 볼 수 있다.  

 

에도시대의 대표적인 우키요에 화가인 '우타가와 쿠니요시(歌川國芳, 1797 - 1861)'의 작품

'단노우라 해전'을 그리고 있다.

수장된 사무라이들이 게로 환생하는 장면!

 

 

 

동시대의 또다른 우키요에의 대가 '우타가와 쿠니사다(歌川國貞, 1786 - 1865)*'의 작품

왼쪽 아래, 파란 게의 사실적 묘사가 인상적이다.  

* 쿠니사다는 일명 '3대우타가와 토요쿠니(三代歌川豊國)'라고도 불림 

 

 

 

독일출신으로 1820년대에 나가사키에서 연구작업을 했던

Philipp Franz Balthazar von Siebold (1796-1866)라는 사람이

<Fauna Japonica (日本動物誌)>라는 백과사전을 내놓았는데, 그 가운데에 실린 삽화이다.

헤이케가니와 그 유사종들(사메하다헤이케가니, 키멘가니)에 대한 그림 설명

 

 

 

 

일본의 시모노세키에 가면 '아카마 신궁(赤間神宮)'이라는 곳이 있다. 온통 빨간색으로 칠해진 유명한 신사다. 빨간색은 슬픔의 표시... 바로 단노우라 해전에서 죽은 안토쿠천황을 모신 곳이다. 

 

 

여기에서는 헤이케 게의 모형이 주요 기념품으로 팔리고 있다고 한다.

 

 

나의 긴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사무라이게'는

알고보니 깊은 역사와 전설을 간직한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4. 게의 비밀

 

 

이제 이 게에 대한 비밀을 과학적으로 풀어볼 차례다.

모범답안은 역시 <코스모스>에서 찾는 게 좋을 듯 하다.

마침 동영상도 준비됐으니 한번 감상해보자.

(게의 실물을 동영상으로 볼 수 있는 대단한 기회!!) 

 

 

이런 제길...

어렵게 자막까지 구해 간신히 합체시켰더니

막상 화면이 작아 글씨가 잘 안보인다.

 

자막만 다시 적어보면 이렇다~

 

 

(재연화면)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이상한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부들이 말하길
헤이케의 무사들이 게의 모습으로 환생해서
바다밑에 살고 있다는 겁니다.
그곳 바다에는 등껍질에 이상한 모양을 한 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모양은 마치
험상궂은 얼굴을 한 고대 일본의 무사얼굴을 연상시킵니다.
어부들은 이 헤이케 게를 잡아도 먹지 않습니다.
그들은 다나우라 전투에서의 불행한 사건을 생각하며
게를 다시 바다로 되돌려보냅니다.

 

(칼 세이건)
이 전설에는 재미난 문제가 있습니다.:
어떻게 무사의 얼굴모양의 게가 나타게 되었을까요?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 답은 인간이 그런 모양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다른 많은 형질과 마친가지로 게의 등껍질 모양은 유전됩니다.
그러나 인간도 마찬가지지만 게에게도 서로다른 유전 형질이 있습니다.
자, 이 게의 머나먼 조상게를 상상해보겠습니다.
사람 얼굴을 아주 조금 닮은 게가 나타나났다고 칩시다.
다나우라 전투보다 아주 오래전에도
어부들은 인간얼굴 모양의 게를 먹기는 꺼림찍했을겁니다.
어부들이 인간얼굴 모양의 게를 바다로 되돌려 보내면서
그들은 선택의 과정을 되풀이한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보통 등껍질의 게라면
아마도 인간은 여러분을 먹어버릴겁니다. :)
그러나 등껍질이 조금이라도 사람을 닮았다면
인간은 여러분을 다시 바다로 돌려보낼것이고
여러분은 여러분을 닮은 자식게를 낳을 것입니다.
그런 어부-게의 관계로
많은 세대가 지나면 결국
무사 얼굴 모양과 더 많이 닮은 등껍질의 게만이 선택적으로 살아남을 것입니다.
이렇게해서,  그냥 사람얼굴도 아니고
그냥 일본인 얼굴이 아닌
무사 얼굴 등껍질게가 생기게 된겁니다.
이것은 게가 원해서 된것이 아닐것입니다.
선택은 외부의 조건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사무라이 얼굴을 닮을수록,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지는겁니다.
그래서 결국, 무사얼굴 모양의 게가 아주 많아졌습니다.

 

 

다시 말해 이런 얘기다.

 

애초에 껍데기 무늬가 사람얼굴과 비슷한 놈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러한 게를 잡으면 먹기가 꺼려져서 그냥 놓아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얼굴과 덜 비슷한 게들이 잡히면 그냥 잡아먹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이 긴 세월 동안 반복되다 보면

사람의 얼굴과 많이 닮은 녀석들만 살아남게 된다.

결국 사람들의 선택에 의해, 게의 진화방향이 정해져 온 것이다.

 

 

이 과정을 진화론에서는 '인위선택(artificial selection)'이라 부른다.

인간은 수만년 동안 어떤 식물과 어떤 동물은 살려놓아야 하고 어떤 것은 죽여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선택해 왔다. 젖소나 개, 낱알이 굵은 옥수수 등의 생물은 1만년 전에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인위선택'의 산물이다. 헤이케 게 역시 이러한 원리로 점점 더 사람의 얼굴을 닮아가며 진화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럴듯 하지 않은가?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반론들도 많만치 않다.

일본의 동물학자인 사카이 히사시(酒井恒)는 그의 저서 <게, 그 생태의 신비(蟹 — その生態の神秘)> (1980)에서 헤이케 게의 인위선택설을 완강히 부정한다. 그에 따르면 헤이케 게의 화석을 보면 이미 인간의 얼굴을 한 지금 모양 그대로인데, 이는 긴 세월 동안 진화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 특히 이 게는 식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포획되는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뭣이라?

식용이 되지 않는다고?

 

 

 

 

 

그렇다!!!

 

 

사무라이게는 식용이 아니라고 한다.

 

 

검색결과 이 녀석들은 몸집의 최대크기가 31mm정도...

 

이렇게 보면 무지하게 푸짐해 보이지만

실은 저 왼쪽뺨에서 오른쪽 뺨까지가 3cm도 안 된다는 것이다.

(코스모스 동영상에서는 그보다는 커보였는데... - -;;)

 

 

애걔걔... 고까짓 걸 어떻게 잡아먹어?

 

그러니

잡으면 그냥 놔 주었겠지...

 

그렇다면 아까 그 이론은 뭐야?

사람들이 자기 얼굴과 닮으면 안 잡아먹고, 안 닮으면 잡아먹어서

점차 닮은 얼굴만 남게 되었다며?

 

...

 

 

 

 

도대체 뭐가 맞는 말인지...

 

 

 

 

게야 말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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