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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하는곳

유럽의 잊혀진 뿌리, 에트루리아

 

* 부부의 석관 (에트루리아, BC 6세기, 파리 루브르박물관 소장)

에트루리아미술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우리는 흔히 '그리스-로마 문화'라는 말을 사용한다. 로마문화 가운데에는 그리스로부터 온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중요한 이름이 빠져있다. 바로 '에트루리아'이다. 그리스문화는 에트루리아를 매개로 로마에 전해졌다. 따라서 '그리스-로마 문화'라는 말은 '그리스-에트루리아-로마'라고 불려야 보다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에트루리아(Etruria)는 이탈리아 중북부, 현재 투스카니(Tuscany)라고 불리는 지방에 대한 옛 이름이다. 이 지역에는 아주 오래 전부터 발달된 문명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철기를 사용하고 뛰어난 해양술을 갖고있던 이들은 인도유럽어족은 아니었으며, 문화적으로도 이웃 민족들과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 그들이 도대체 어디로부터 온 사람들인지, 지금도 여러 설들이 난무한다. 그저 그들을  '에트루리아인'이라고 부를 뿐이다.

 

BC 10세기경부터 이탈리아 반도에 나타난 에트루리아인들은 BC 7세기부터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간다. 그리하여 당시 지중해 사회의 패권을 차지하고 있던 그리스와 대치, 교류하면서 로마를 삼켜버리기도 했다. 로마왕국은 초창기부터 에트루리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로마가 왕정을 버리고 공화정을 택한 것도 이러한 민족의식과 관련이 있다. 에트루리아인에 의해 오랫동안 다스려지고 있던 로마인들은, 더 이상 남의 지배를 받을 수 없다고 힘을 합쳐 일어섰고, 결국 에트루리아 왕을 몰아내고 로마 귀족에 의한 공화국을 세웠던 것이다.

공화정으로 성취된 로마의 힘은 이후 계속 커나갔고, 마침내는 선지배자인 에트루리아를 완전히 멸하고 세계 대제국이 되었다. 로마제국 이후 에트루리아문명은 역사 속으로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에트루리아문명의 실체를 로마를 통해 고스란히 알 수 있다.
에트루리아인들은 뛰어난 건축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아치형 건축물을 발명해 낸 위대한 기술자들이었다. 로마인들은 이 기술을 채용해 그 아치 위에 수로와 성문, 성벽을 축조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로마의 자랑스러운 유적 '클로아카 막시마(Cloaca Maxima, 하수도)'는 에트루리아의 오리지널 기술이다.
에트루리아인들은 전차경주나 격투기대회를 자주 열었고, 그 관람을 즐겼다. 로마 시대의 검투사 제도는 그들로부터 유래된 것이다. 그리고 개선행렬과 같은 뻑적지근한 대규모의 축제들도 에트루리아에서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대 최고의 그리스문화는 일단, 당시 교류하고 있던 에스투리아로 전해졌다. 에트루리아의 '부케로(bucchero)' 등을 보면 그 사실을 명확히 알 수 있다. 부케로는 BC 7-5세기경 제조된 에트루리아 특유의 흑도자기를 가리키는 말로, 세계 도자기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는 고유명사다. 지금도 다양하게 남아있는 부케로들을 모아보면, 초기에는 단순한 검은색이었는데 점차 화려하게 변화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스의 흑회식, 적회식 도기의 영향이다.

 

 

 

 
 
그리스 공예의 영향을 받은 부케로에는 십중팔구 그리스 신화와 관련된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그리스는 공예기법 뿐 아니라 신앙체계까지도 에트루리아에게 물려준 것이다. 올림푸스 신들의 이야기는 그리스에서 에스투리아로, 그리고 이후 로마에까지 이어져 '그리스-로마 신화'를 완성시켰다. 제우스가 주피터가 되면서 로마 시내에 신전이 생겨난 것도 실은 에트루리아인들의 전통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은 뭐니뭐니해도 알파벳의 효시가 에트루리아문자라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페니키아인들의 표음문자를 활용해 BC 9세기경, 현재 알파벳의 기원이 되는 그리스문자를 발달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ΑΒΓΔΕΖΗΘΙΚΛΜΝΞΟΠΡΣΤΥΦΧΨΩ

 

그런데 이 문자는 역시 그대로 로마에 전해진 것이 아니고, BC 7세기경 먼저 에트루리아인에 의해 받아들여져 26개의 에트루리아문자로 재탄생하였다. 그것이 로마에 이어져 로마자(라틴어)의 원형을 이룬 것이다. 현재의 영어가 에이,비,씨로 시작하는 것은 에트루리아의 문자순서가 그러하였기 때문이다. (만약 그리스문자를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그 순서는 알파,베타,감마, 즉 a,b,g로 시작했을 것이다.)


 

현재 모든 유럽이 올리브와 포도를 재배하는 것도 모두 그리스- 에트루리아의 전통이다. 에트루리아인들은 그리스인들의 농업기술을 해상로로는 멀리 스페인과 이집트까지, 육로로는 갈리아(프랑스)와 게르마니아(독일)에까지 전해주었다. 에트루리아가 없었다면, 어쩌면 지금쯤 프랑스 와인은 맛 볼 수도 없었을 지 모른다.

 

 

이처럼 에트루리아가 서양사회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유럽의 많은 역사 교과서에서 이들의 이름을 빠뜨리지 않고 강조하는 것도 그 떄문이다. 에트루리아인들은 비록 정체불명의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문화는 그리스 문명과 로마제국을 잇는, 너무나도 중요한 유럽의 뿌리이다.

 

 

 

* '파시스(Fascis)'라고 불린, 에트루리아인들의 권표(權標).
도끼 둘레에 여러 개의 막대기를 묶어 만든 이 물건은
이후 로마인들이 권위의 상징으로 사용하였고
프랑스 혁명 중에는 혁명의 상징으로 사용하였으며,
20세기에는 이탈리아의 파시스트당에서도 사용하였다.
그리고 지금도, 서양인들이 '정의'를 논할 때 숱하게 등장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