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호크니의 <명화의 비밀>은 충격적인 책이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내게는 <다빈치 코드>이상의 충격이었다.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내일모레면 칠순이지만 아직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영국의 화가이다. 60년대에 영국 팝아트의 기수로 부상한 후 회화, 판화, 사진, 영화, 무대미술, 일러스트레이션 등 거의 모든 매체를 통해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my gallery post '안녕하시오, 피터 블레이크 선생...'에 그의 모습이 잠깐 나오기도 했다. ^^) 얼마 전부터 '사진콜라주'에 심취해 실험정신이 가득찬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명화의 비밀> (Secret Knowledge - Rediscovering the lost techniques of the Old Masters, 한길아트, 2003, 남경태 옮김)은 서구 미술사학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호크니의 문제작이다. 2000년도 미국 <New Yorker>지는 그의 연구 결과를 특집으로 다루었고, 영국 BBC에서는 TV 프로그램을 제작해 방송하기도 했다. 2001년 뉴욕대학에서는 호크니 심포지엄까지 열어 그의 주장과 논란들을 모으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그의 주장을 둘러싼 논쟁은 끊이지 않고 계속 되고 있다.
호크니가 <명화의 비밀>에서 주장하는 것은 단 한 가지이다. 서양의 많은 화가들은 15세기 초부터 광학기구(거울, 렌즈 등)를 이용하여 그림을 그려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물화를 그린다고 한다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모델을 앞에 놓고 손과 눈만을 이용한 '눈굴리기(eyeballing)'방식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모종의 도구들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그는 애초에, 앵그르(Ingres)의 드로잉들을 관찰하다가 의문을 갖게 됐다고 한다. 앵그르의 스케치 가운데에는 놀랄 만큼 정확하지만, '눈굴리기'로 했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빠른 솜씨로 그려나간 흔적들이 눈에 띄였다.
* 의문을 촉발한 앵그르의 그림. 지운 흔적없이 손으로 쓱쓱 그려나갔는데 놀랄만큼 정확한 솜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시 대단한 화가구나!'하고 감탄하면서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호크니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신 역시 화가로서, 그러한 그림은 도저히 그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앵그르가 모종의 광학장치를 작품에 이용했다고 확신한다.
드로잉의 경우에는 카메라 루시다였겠지만,
회화의 섬세한 세부를 그릴 때는 카메라 옵스큐라도 사용했을 것이다.
그것만이 내 유일한 설명이다."
<명화의 비밀> p.35
이것은 놀라운 결론이었다. '기적의 손'이라고 찬탄을 받아왔던 대가들이, 실은 광학기구를 이용해 '반칙'을 했다니... 그것은 마치, 능숙하지 못한 어린애들이 습자지를 대고 밑그림을 베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묘사를 위해 모사(模寫)도구를 이용하는 짓이다.
우리가 항상 '어떻게 저런 묘사가 가능할까?'하며 놀라워 했던, 옷주름에서 카펫의 무늬까지 정밀하게 그려낸 화가들의 그림이 실상은 거울과 렌즈를 이용해 베껴낸 것이라고 호크니는 단언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
그것이 바로 <명화의 비밀>의 주된 내용이다. 호크니는 이 책에서 수백장의 그림들을 하나하나 분석해 가며 놀라운 증거들을 제시한다. 거의 편집증처럼 느껴지는 그의 집요한 주장들은 처음에는 황당하게 들리지만, 차츰 그럴 듯 해지다가, 급기야는 '믿지 않을 수 없는' 단계로까지 발전한다. 미술사를 다시 써야 할 정도의 충격이다...
호크니에 따르면 광학기구들은 1420-30년대에 플랑드르 화가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도입됐다고 한다. 베르메르, 렘브란트, 반 아이크, 할스 같은 플랑드르 화가들이 사진처럼 정확한 이미지를 얻기 위해 거울과 렌즈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기술은 당시로서는 일종의 ‘사업 기밀’이었지만, 매우 빠른 속도로 각국에 퍼져나갔다. 15세기 이후의 여러 그림들을 살펴보면, 그 '사실성'이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에 갑자기 변해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그 시기에 광학기구들이 도입됐기 때문이다.
화가들은 대상물의 3차원 이미지를 렌즈를 통해 2차원 평면에 투영한 다음, 종이에 그대로 따라 그릴 수 있었다. 그 결과 습작들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옛날처럼 본그림을 그리기 위해 여러 장의 밑그림을 그려가며 연습해야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심지어 ‘16세기 말에 갑자기 왼손잡이 모델이 부쩍 늘어난 것'도 광학기구들 때문이라고 호크니는 주장한다.
마솔리노 다 파니칼레 (1425)
아뇰로 브론치노 (1545)
* 위의 두 그림을 비교해 보면 옷의 무늬를 그리는 기술이 갑자기 혁신됐음을 알 수 있다.
호크니는 심지어, 광학기구를 이용한 그림작업을 자신이 직접 재연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사실적 묘사를 훨씬 잘 할 수 있었음은 물론, 작업시간도 크게 단축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라틴어로 ‘어두운 방’이라는 뜻)'는 우리가 초등학교때 배웠던 '바늘구멍 사진기(핀홀카메라)'와 완전히 같은 원리를 가진 광학기구이다. 어두운 방(또는 상자)의 벽에 작은 구멍을 뚫어놓으면 구멍을 통해 투사된 빛은 반대편 벽면에 거꾸로 된 상(像)을 남긴다. 이 원리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고대의 아리스토텔레스로 알려져 있는데, 15세기 이후 화가들에 의해 그림을 그리는 보조용구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카메라 옵스큐라를 통해 대상물의 정확한 상을 얻고, 그 위에 종이나 화폭을 대고 베껴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주변이 깜깜해야 상이 더 잘 보인다는 점이다. (결혼식장에서 사진찍을 때, 사진사가 필름 원판을 보기 위해 검은 천을 뒤집어 쓰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그래서 장막을 두른, '야외용' 카메라 옵스큐라도 등장했다.
카메라 옵스큐라의 등장으로 화가들은 정물화, 풍경화, 인물화 등 각 장르에서 보다 세밀한 묘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정교한 면은 있었으나 휴대하기 불편함이 있었다. 이에 영국인 월리엄 하이드 울러스톤이 1806년 '카메라 루시다(camera lucida, 라틴어로 '밝은 방'이라는 뜻)라는 새로운 도구를 발명하게 되었다. 이것은 간단히 말해, 하나의 프리즘에 두 개의 반사면을 부착한 기구이다. 화가는 접안 구멍으로 사물을 보는 동시에 프리즘을 통해 비추어지는 종이와 연필의 끝도 볼 수 있어, 구멍을 통해 사물을 보면서 그 윤곽을 따라 종이에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 숙련이 필요한 장치이기는 하지만 휴대가 간편해 여행용이나 인물스케치용으로 자주 쓰였다.
* 카메라 루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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