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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통

누구도 도망갈 수 없다-천궁(天弓)

천궁

국방과학연구소는 최근 중거리 지대공유도무기 ‘천궁’을 개발했다. 단거리 지대공유도무기 ‘천마’와 휴대용 지대공유도무기인 ‘신궁’에 이어 주요 방공유도무기를 모두 국내에서 개발한 것이다. 천궁은 미사일, 발사대, 교전통제소, 레이더로 이뤄져 있는데, 이들이 모두 잘 어우러져야 한다. 특히 천궁에 사용된 ‘다기능레이더-능동호밍’ 유도 방식은 미국, 러시아, 프랑스, 일본 등 일부 국가만 개발한 흔치 않은 기술이다. 천궁에 사용된 핵심 기술과 시험 과정, 천궁 개발의 의미를 살펴본다.

 

 

천궁이 나오기까지


한국은 1980년대부터 방공유도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말에 단거리 지대공유도무기인 천마를, 1990년대에는 휴대용 지대공유도무기인 신궁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군의 주력 방공유도무기인 중거리 방공은 호크(HAWK, Homing All the Way Killer)에 의지했다. 호크는 1960년대 미국이 개발한 방공무기로 두 차례 성능을 개량했지만 날로 증가하는 방공 위협에 대처하기 힘들었다. 중거리 방공유도무기는 정밀 타격 기술과 감시, 추적, 지휘통제, 미사일-레이더-교전통제소 연동, 체계 통합 등 모든 기술이 잘 어우러져야 한다. 개발예산이나 개발기간도 만만치 않은 대규모 프로젝트다. 국방과학연구소는 천마와 신궁 개발 성공을 바탕으로 2000년부터 중거리 지대공유도무기 천궁 개발을 계획했다. 


천궁. 수직으로 발사된 미사일은 측추력기의 도움으로 방향을 잡아 목표를 향한다.

 

5년의 연구 끝에 개발한 ‘천궁’은 기존의 호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대전자전 능력, 빠른 미사일의 속도, 정확한 명중률을 두루 갖췄다. 하나의 레이더로 여러 표적을 한꺼번에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작전 준비 시간이 짧고, 적은 인원으로도 운용할 수 있다. 참고로 '천궁'은 '철매-II', 혹은 '철매-2'로도 불리는 데, 그것은 일종의 프로젝트 명칭이며, 양산 제품 명칭은 '천궁'으로 정해졌다.

 

 

하늘에서 눈을 뜬다

천궁의 명중 장면. 천궁의 미사일이 표적기를 직격했다. 미사일이 비행기에 근접하면 지향성 탄두가 폭발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다.


높은 명중률을 갖추기 위해선 미사일의 기능만으론 충분치 않다. 미사일부터 레이더, 교전통제소까지 모든 시스템에 높은 수준의 기술이 필요하다. 먼저 적기를 탐지해야 한다. 천궁은 다기능 레이더로 표적을 탐지한다. 적기를 탐지하면 정밀추적을 시작한다. 천궁의 레이더는 지금까지 사용했던 방공 레이더와 차원이 다르다. 기존의 호크는 각기 다른 고도를 탐지하고, 적기를 추적하는 5개의 레이더가 임무를 수행했다. 천궁은 호크 5개의 레이더가 하는 모든 기능을 단 한 개의 레이더로 한다. 수십 대의 적기와 적 미사일이 동시에 날아오더라도 발사대가 확보된 만큼 미사일을 쏘아 대응할 수 있다.

 

레이더가 적기를 탐지, 추적하면 교전통제소에서 명령을 내린다. 통제소는 적기의 위협을 판단하고, 다른 부대 또는 아군 비행기와 중복되지 않도록 교전 상황을 판단해 미사일 발사를 명령한다. 이때 전장을 원활히 파악하고, 다른 방공포대와 아군기와의 연동 작전을 신속히 펼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적기의 위치와 속도에 따라 위협 정도를 분석해 대응 순서를 정하고, 발사대 상황을 고려해 어떤 발사대를 택할지 골라야 한다. 이때 교전통제소로 입수되는 수많은 정보를 빠르게 자동으로 처리해야 한다.

 

발사명령이 떨어지면 발사대에서 미사일이 발사된다. 천궁의 발사대는 모든 방향으로 발사하기 위해 수직 발사 방식을 택했다. 호크는 적기가 날아오는 위치를 예측해 그 쪽으로 발사대를 향하게 한 뒤 발사했다. 천궁은 미사일이 지향하는 짧은 시간까지 단축하기 위해 수직으로 발사하는 것이다.

 

수직 발사는 2단계를 거친다. 먼저 압축가스로 미사일을 일정한 높이까지 띄운다. 안전한 위치에 도달하면 유도탄을 표적 방향으로 향하게 한 뒤 로켓을 점화시켜 목표로 빠르게 날아간다. 우리가 보기엔 톡 튀어나간 미사일이 잠깐 공중에 떠 있다 날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발사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유도탄 로켓이 발사되며 생기는 화염으로 주위가 불타거나, 발사대가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발사된 미사일은 소형 마이크로모터를 이용한 측추력기로 방향을 전환한다. 발사 초기에 미사일의 속도가 느려 방향을 전환하기 위해선 측추력기가 필요하다. 미사일은 일정 속도 이상이 돼야 공기의 저항에 의해 방향을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발사된 미사일은 일단 레이더가 준 정보를 바탕으로 예상요격지점을 향해 관성항법으로 날아간다. 미사일은 비행 중 공기 마찰에 의해 표면이 급속히 가열된다. 미사일의 가장 앞부분인 레이돔은 전파를 송수신하면서도 ,1000℃까지 달아오르는 열과 고압을 견뎌야 한다. 천궁의 레이돔은 아주 작은 기포 하나, 흠집 하나도 없어 깔끔하다. 

 

적기에 가까이 가면 미사일이 눈을 뜬다. 탐색기가 작동하며 적기를 포착, 추적한다.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면서 음속 이상의 속도로 비행하는 적을 탐지, 포착, 추적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이를 위해 능동형 마이크로파탐색기를 개발했다. 수많은 항공기에 대한 기본 데이터를 수집하고 축적해 빠르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적기가 회피 기동을 하면 다시 측추력기가 작동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선회 없이 적기를 따라잡는다.

 

적기에 근접한 미사일은 바로 맞추거나 근접신관이 터지며 파편과 폭풍으로 적기를 공격한다. 이때 파편의 속도와 수에 따라 적기에 입히는 피해 정도가 다르다. 그렇지만 파편의 수와 속도를 마냥 높일 수만은 없다. 탄두의 무게가 크면 탄도를 지지하는 구조물이 무거워지고, 더 큰 추진기관이 필요하게 되며, 다시 추진력을 버티는 강한 구조가 뒤따라야해 무게가 한없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천궁의 미사일은 평소 사진 속의 통 안에 보관돼 있다. 습기와 온도 변화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천궁에는 탄두 무게를 획기적으로 줄이면서도 위력은 높인 지향성 탄두를 탑재했다. 일반 파편탄두가 모든 방향으로 퍼지는 것과 달리 천궁의 탄두는 표적 방향으로 집중해 터진다. 표적 방향으로만 파편이 빠른 속도로 나가 위력은 더 커지면서 더 적은 파편으로도 충분해 무게가 한층 가벼워졌다. 국방과학연구소는 표적지향성 탄두를 만들기 위해 표적방향감지와 변형화약기술을 개발했다.

 

 

어떠한 혹독한 환경도 문제없다


천궁은 다가올 실전 배치를 앞두고 철저한 검증을 거쳤다. 먼저 야전에 배치되는 상황을 가정해 다양한 환경에서 오랜 시간 잘 작동되는지를 따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더운 대구에서 무덥고 습한 여름을 견딜 수 있는지 시험했으며, 가장 추운 1,400m의 전방 고지대에서 혹독한 겨울을 견딜 수 있는지 시험했다. 최고 36℃, 최저 영하 30℃의 온도에서도 천궁은 무리 없이 작동했다.

 

전자기파 시험장에서 전자파를 이용한 교란을 견뎌내는 시험을, 기후환경시험장에서 비정상적인 온도와 습도를 견뎌내는 시험을 했다. 그리고 진흙길, 모래사장, 풀숲 등 다양한 곳을 무리 없이 다닐 수 있는지를 봤다. 하염없이 내리는 빗물에도 견딜 수 있는지 시험했다. 천궁은 어떠한 혹독한 환경도 견뎠다.

 

천궁 미사일의 신관 조우 실험. 미사일이 적기에 가까이 갔을 때 신관이 제대로 터지는지를 실험한다. 여러 비행기의 형태를 감지해야하기 때문에 비행기 모형을 두고 실험한다.

천궁은 전방 1400m 고지대에 있는 부대에서 혹독한 겨울을 견디는 시험을 받았다. 사진의 레이더는 적기를 탐지하고, 추적한다. 아무리 많은 적기가 와도 동시에 전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사격시험도 무사히 통과했다. 2008년부터 실제 전투기에 준하는 속도를 가진 표적기를 직접 사격했다. 적기가 낮은 고도로 빠르게 날아오는 어려운 상황을 가정했다. 천궁은 이 표적기를 직격했다. 직격은 미사일이 표적에 직접 충돌한 것이다. 천궁의 미사일은 회피하는 표적을 격추하기 위한 근접신관이 있다. 천궁은 표적을 직격해 근접신관이 동작할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이밖에도 횡단표적, 기동표적, 퇴각표적 등 적기의 움직임을 가정한 모든 시험에서 마시일이 적기를 직격했다. 동시에 2발을 발사해 2개의 표적을 직격하기도 했다.

 

천궁은 이제 실전 배치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금 공군이 운용하고 있는 호크를 천궁이 대체하면 우리나라의 방공 능력은 획기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중거리 방공유도무기에는 모든 유도무기와 복합무기 기술이 집약돼 있다. 천궁의 개발로 우리나라는 모든 주요 방공유도무기를 자국의 능력으로 개발한 몇 안 되는 나라가 됐다. 천궁은 세계에서도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수출 가능성이 높다. 천궁의 의미는 우리가 개발한 무기로 우리의 하늘을 지킨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앞으로 대륙간 탄도탄과 인공위성 공격 미사일을 막는 우주방어기술의 기반이 세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