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휴지통

인빈서블급 경항공모함-HMS 아크 로열

아크 로열

‘항공모함이 단돈 61억 원?’


2011년 영국발 외신 보도가 네티즌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영국 국방부가 국방비 삭감 때문에 경항공모함 아크 로열(Ark Royal)을 포함해 각종 무기들을 경매 시장에 내놓았다는 기사였다. 한때 대영제국으로 불리며 전 세계를 호령했던 영국이 돈이 없어 항공모함까지 경매 시장에 내놓았다니. 더구나 경매시장에 나온 아크 로열의 가격은 영국 돈으로 350만 파운드, 한화로 약 61억 5,000 만원이었다. 보통 항공모함 건조에 수조 원의 돈이 들고 우리 육군의 국산 K1A1 전차 한 대가 50여억 원, F-15K 전투기가 1,000억 원, 한국형 이지스함 1척이 1조 원인 것에 비춰보면 믿기지 않는 헐값인 셈이다.

 

영국의 인빈서블급 경항공모함 아크 로열. 2011년 경매에 붙여졌다.

 

 

영국의 인빈서블급 경항공모함의 3번함

아크 로열은 영국의 인빈서블(Invincible)급 경항공모함 3척 중 마지막으로 건조된 배다. 1985년 취역해 1990년대 말 코소보 내전과 2003년 이라크 전쟁 등에 참전했고 2011년 3월 퇴역했다. 26년 만에 퇴역한 셈이다. 인빈서블급은 2만t급 경항공모함으로, 미국의 9만~10만t급 대형 항공모함에 비하면 보잘것없어 보인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세계 각국 해군이 경항공모함을 도입하는 데 기폭제 역할을 했다. 현대적 경항공모함의 시초로 불리는 이유다.

 

미국의 니미츠급 항공모함(좌)과 영국의 인빈서블급 경항공모함(우)의 크기 비교.

인빈서블급 경항공모함은 수직이착륙기를 탑재하고, 스키점프대 형태의 비행갑판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인빈서블급은 1960년대 중반 항공모함 운용 중지 결정이 내려진 뒤 항공모함 보유에 대한 영국 해군의 숙원으로 구상됐다. 만재 배수량은 2만 710t, 전장 209.1m, 폭 36m로 수직이착륙기인 해리어 전투기와 각종 헬기 등 21~22대의 항공기를 탑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80년 취역한 1번함 인빈서블을 바라보는 영국 정부와 공군의 시선은 냉담했고 결국 1982년 2월 1억 7500파운드에 호주 매각이 결정됐다.


하지만 2개월 뒤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 제도를 침공, 포클랜드 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인빈서블의 운명은 바뀌었다. 포클랜드 전쟁에서 인빈서블은 함재기인 해리어 등을 통해 그 가치를 입증했다. 당시 앤드류 영국 왕자가 인빈서블에 탑재된 시킹(Sea king) 헬리콥터 조종사로 참전했다. 영국은 인빈서블에 이어 2번함 일러스트리어스(Illustrious)를 1982년에, 그리고 3번함 아크 로열을 3년 뒤 각각 실전 배치했다.

 

인빈서블급 경항공모함 1번함 인빈서블.

포클랜드 전쟁에서 작전중인 인빈서블. 전쟁을 통해 그 가치를 입증했다.

 

 

여느 항공모함처럼 인빈서블급의 위력은 탑재된 함재기에서 나온다. 함재기의 주력은 수직이착륙기 해리어이며, 2종류가 탑재된다. 보통 시해리어(Sea Harrier) FA.2 수직이착륙기 6대, 해리어 GR.7 4대(공군 소속) 등 10대로 구성된다. 헬기의 경우 시킹 HAS.5 대잠헬기 7대, 시킹 조기경보헬기 3대, 기타 헬기 2대 등 12대로 돼 있다. 인빈서블급은 골키퍼 30mm 근접방공시스템 3문과 20mm 기관포 등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항공기 승무원을 포함해 1,000여 명의 승조원이 탑승한다.

 

인빈서블급 2번함 일러스트리어스. 해리어 등 함재기가 보인다.

 

 

영국 해군의 자존심이었던 아크 로열


아크 로열의 매각은 이 배가 영국 해군의 자존심으로 불려왔다는 점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아크 로열이라는 배 이름은 역사가 깊다. 영국 해군에서 아크 로열이라는 이름을 가진 군함은 다섯 척이다. 첫 아크 로열은 16세기에 스페인 무적함대를 무찌른 영국 함대의 기함이었다. 2대 아크 로열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상선을 개조하여 항공모함으로 진수된 배다. 3대 아크 로열은 1930년대 처음부터 항공모함으로 설계돼 진수된 최초의 영국 군함이었다. 그 전에는 다른 군함들을 개조해 만든 항공모함을 사용했었다.

 

3대 아크 로열은 길이 243m, 만재 배수량 2만 7,700톤으로 60여 대의 함재기를 탑재할 수 있었다. 1938년 취역해 2차대전 초기 많은 전공을 세웠다. 2차 대전 때 영국 해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독일군의 대표적인 전함 비스마르크호를 격침하는 데 큰 공헌을 한 것도 3대 아크 로열이었다. 당시 아크 로열에서 발진한 뇌격기 등이 비스마르크의 방향타를 파괴해 움직이기 힘들게 만들었던 것이다. 3대 아크 로열은 1941년 독일군 유보트가 발사한 어뢰에 침몰했지만 18년 뒤인 1959년 5만 3,000t급(만재 배수량 기준)의 항공모함으로 다시 태어났다. 4대 아크 로열은 1978년 퇴역할 때까지 활약했고 그로부터 7년 뒤 5번째로 지금의 아크 로열호가 태어난 것이다. 아크 로열에 대한 영국 국민과 군의 애정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무적함대를 무찌른 1대 아크 로열(좌상), 제1차세계대전에서 활약한 2대 아크로열(우상)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3대 아크 로열(좌하), 50년대에서 70년대까지 활약한 4대 아크 로열(우하)

 

 

팔려 나가는 인빈서블급의 운명

영국 정부는 아크 로열에 앞서 1번함인 인빈서블도 2010년 말 경매에 부쳤다. 인빈서블에 대해선 주방장 출신의 홍콩 기업인이 광둥(廣東)성 주하이(珠海)로 견인해 국제학교 용도로 개조하겠다며 입찰 경쟁에 뛰어들어 화제가 됐었다(결국 터키의 선박 재활용 회사에 매각). 아크 로열에 대해서도 홍콩 등 화교권 사업가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 일각에선 중국의 항공모함 보유 계획과 관련해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이 이미 인빈서블급보다 큰 항공모함 바르야그를 개장해 시험운항까지 했기 때문에 인빈서블급을 항공모함으로 활용할 가능성은 낮다고 지적한다.

 

영국의 차세대 항공모함인 퀸 엘리자베스급 항공모함의 상상도

 

 

현재 영국 해군에는 경항공모함 3척 중 2척이 경매에 부쳐져 2번함인 일러스트리어스만 남아있는 상태다. 그나마 해리어기들까지 퇴역해 일러스트리어스는 2014년까지 전투기 없이 헬기만 탑재하는 헬기 항공모함으로 운용한 뒤 퇴역할 예정이다. 사실상 항공모함이 한 척도 없게 된 영국 해군은 2023년까지 2척이 건조될 6만 5,000t급 퀸 엘리자베스급 항공모함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퀸 엘리자베스급에는 F-35 등 전투기와 조기경보기, 헬기 등 40~50대의 항공기가 탑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