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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통

미국의 아이콘이 된 4륜 구동 자동차-HMMWV 험비

HMMWV 험비

미군하면 떠오르는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는 바로 험상궂게 생긴 커다란 자동차, 험비일 것이다. 1991년 걸프전이 CNN을 통해 생중계되면서 험비는 미군의 아이콘처럼 되어 버렸다. 미군은 모두 16만 2천여 대의 험비를 운용하고 있다. 우선 험비(Humvee)는 정식명칭이 아니다. HMMWV, 즉 High Mobility Multipurpose Wheeled Vehicle(고기동 다목적 차량)이 원래 이름인데, 유사한 발음을 따서 험비라고 부른다.

 

걸프전 이후로 미군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고기동다목적차량 험비(HMMWV)

 

 

잡다한 차량들, 험비로 다 통일해버려!

험비가 도입된 1985년 이전까지만 해도 미군이 실전에서 활용하던 차량은 다양하다 못해 잡다할 정도였다. 당시 주력이던 M151 ‘지프’ ¼톤 트럭이나 M715 카이저 1¼톤 트럭은 이미 수명이 다하고 있었다. 새롭게 개발한 고기동차량인 M561 감마고트(Gamma Goat)는 실망스러운 성능으로 보급되지 못했고, 결국 CUCV(Commercial Uility Cargo Vehicle; 상용 다용도 수송트럭)라는 명칭 아래 상용트럭까지 구매하는 형국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차량들을 통합하기 위해서 새로운 전술차량이 요구되었는데, 그 시험모델은 놀랍게도 유명한 스포츠카 메이커 ‘람보르기니(Lamborghini)’에서 만들어졌다.

 

바로 람보르기니의 컨셉트 차량인 ‘치타’인데, 결국 미군이 채용하지는 않았지만 이후 선정할 차량에 대한 방향이 여기에서 드러나게 된다. 람보르기니는 이 ‘치타’모델을 결국 상용으로 만들어 ‘LM002'라는 모델을 선보였는데, 이는 현재 300대만이 남아 있는 전설의 SUV로 남아 있다. 결국 1979년이 되어서야 새로운 전술차량에 필요한 성능이 확정되고 1981년부터 선정사업이 시작되었다. 새롭게 만들어야 할 전술차량에는 그야말로 군용차량에서 기대할 수 있는 미사여구는 다 동원되었다. 산악이나 비포장도로 등 전 세계 어떤 지형도 통과할 수 있는 험로주행능력, 하천을 건널 수 있는 도하능력, 어떤 악조건도 이겨낼 수 있는 차체 강성, 그리고 손쉬운 정비성능 등이 새로운 차량의 요구조건이었다. 이에 따라 크라이슬러나 포드 등 미국 굴지의 업체들이 신형전술차량사업에 뛰어들었는데, 사업자로는 AM제너럴(AM General)이 선정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군 소형전술차량의 변천 과정 <출처: Inteledge Inc.>

 

 

험비의 능력과 한계

험비는 당시 군용차량의 상식을 뛰어넘는 ‘고기동’ 차량이었다. 경사각 60도를 등판할 수 있고, 46cm 높이의 수직장애물이나 76cm 깊이의 참호도 거침없이 통과할 수 있는 전천후 주행능력을 자랑했다. 그야말로 길이든 길이 아니든 종횡무진 달릴 수 있는 군용차량이었다. 많은 이들이 험비를 놓고 ‘스테로이드(근육강화주사)를 맞은 지프’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험비는 놀라운 기동성, 뛰어난 범용성으로 찬사를 받고 있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차량 같은 것은 없다. 험비에도 많은 단점이 있는데, 우선 내부 공간이 문제이다. 육중한 차축으로 기어박스 부분이 실내의 1/3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실제로 승차좌석이 비좁고 불편하다. 다음으로 주행신뢰성도 문제로 지적되는데, 비포장도로를 달리다가 차축이 빠지거나 차량이 전복되는 일도 허다하다. 또 다른 문제는 차량의 넓이다. 험비는 차량 폭이 너무 넓어서 CH-47 헬리콥터에 탑재할 수 없다.

 

따라서 미군 특수부대나 해병대 등은 험비 대신 FAV(Fast Attack Vehicle; 고속강습차량)나 M151계열의 차량을 운용하고 있다. 특히 험비는 약한 장갑을 채용하여 모가디슈 전투에서는 미군 측에 많은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이후 방탄성능이 강화된 험비들이 나왔지만 최근 대테러 전쟁에서는 IED(Improvised Explosive Device; 급조폭발물)  공격으로 엄청난 사상자를 기록하고야 말았다. 결국 미군은 험비를 대신하여 MRAP(Mine-Resistant, Ambush Protected; 지뢰방호 장갑차)을 대량으로 구입하고 있다.

 

험비는 IED(급조폭발물)를 이용한 게릴라식 공격에 취약하다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험비의 시대는 가고 있다

험비는 30년에 가까운 세월을 거치면서 여러 차례 개량이 이뤄졌다. 우선 최초에 등장한 기본형(A0 시리즈)은 6.2리터 디젤엔진, 3단 자동기어에 총중량이 3.5톤이었다. 1991년 등장한 A1 시리즈에서는 동력계통과 서스펜션이 강화되었는데, 차량 총중량까지 4.5톤으로 늘어나 버렸다. 한편 1994년부터는 A2시리즈가 생산되었는데, 엔진이 6.5리터로 바뀌고 4단 전자제어식 변속기어가 채용되었다. 출력이 늘어나면서 차량 탑재중량도 최대 2톤까지 늘어난 것이 최대 특징이다.

 

한편 1993년 모가디슈 전투를 거치면서 험비의 성능개수사업도 동시에 진행되었다. 바로 ECV(Enhanced Capacity Vehicle)인데, 기존의 험비에 방탄키트를 부착하여 생존성을 높인 차량이다. ‘장갑강화형(Up Armored) 험비’라고도 불리는 ECV는 4.6톤으로 늘어난 중량에도 기동성을 잃지 않도록 6.5리터 엔진과 강화 서스펜션을 채용했다. ECV에 해당하는 험비로는 M1114/M1151 무장탑재차량, M1113/M1152 하드탑차량, M1165 병력/화물수송차량, M1167 TOW차량 등이 배치되어 있다.

 

험비의 종류와 변천사 <출처: Inteledge Inc.>

 

 

한편 험비의 차량재생사업(HMMWV Recapitalization)도 한창이다. 현재 험비의 대다수가 80년대 초중반에 공장에서 출고되었는데, 원래 험비는 15년 운용을 예상하고 만들었으니 대부분의 차량이 열악한 상태이다. 이에 따라 차량재생사업을 거친 험비들은 15년을 더 사용하게 된다. 그리하여 미국이 험비를 구매하는 것은 올해가 마지막이다. 험비의 뒤를 이을 새로운 차량으로 현재 JLTV(Joint Light Tactical Vehicle; 합동 경량 전술차량) 사업이 진행 중이다.

 

 

험비의 민수형과 카피판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차량이니만큼 험비의 인기는 세계적으로 높다. 특히 이런 인기에 부합하여 험비는 민수용 차량까지 등장하였다. 바로 허머 H1, H2, H3가 그 주인공들이다. 허머(Hummer)는 M998 험비를 민수용으로 내놓으면서 AM 제너럴이 만든 브랜드였다. 그리하여 허머 H1이 1992년부터 등장했는데, 걸프전의 이미지를 등에 업고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아놀드 슈와르체네거의 애마로 알려지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험비는 그 인기에 힘입어 ‘허머’라는 이름의 민수형 자동차로 판매되었다. 초기에 인기를 끌었으나,
시장 변화에 고전하다가 2010년을 마지막으로 생산이 종료되었다.

 

 

AM 제너럴은 1998년 허머 브랜드를 제너럴모터스에 판매했는데, 이후에 허머 H2와 H3가 등장했다. 사실 두 모델은 겉모습만 허머와 비슷할 뿐 플랫폼은 GM에서 생산하는 SUV에 기반하고 있다. H1만이 진정한 험비이고 H2와 H3는 전혀 다른 차량인 셈이다. 그러나 허머 H1도 2007년 미국에서 배기가스 규제법이 발효됨에 따라 2006년부터 생산이 중단되어 버렸고, 허머 브랜드의 중국 판매가 무산되자 제너럴모터스는 2010년을 마지막으로 H2와 H3의 생산을 끝냈다. 한편 허머의 등장과 함께 여러 나라에서 군용 고기동 차량에 대한 개발을 시작했다.

 

현재 스페인의 VAMTAC, 러시아의 GAZ-2975, 일본 육상자위대의 고기동차 HMV, 프랑스의 르노 셰르파2, 이탈리아 이베코의 LMV 등 다양한 차량이 실전에 배치되어 있다. 한편 최근에는 허머 브랜드의 중국 구매 시도, 중국의 카피판 험비 등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형 험비의 개발을 마치고 획득하려고 했다. 하지만 때마침 들이닥친 IMF 금융위기로 사업이 좌초된 이후, 한국형 험비 사업은 오랜 기간 진행되지 못하고 있었다. 기왕에 늦게 진행되는 사업이라면 미군이 지난 30년간 배운 험비의 노하우와 JLTV의 개발노력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1. IED(Improvised Explosive Device; 급조폭발물)

    폭약과 금속파편 등 간단한 폭발장치를 이용하여 현장에서 임의로 만든 사제 폭발물을 가리킨다. 첨단기술로 만들어진 군용 폭발물에 성능은 떨어지나, 대단히 쉽고 저렴하게 만들 수 있어 비정규 전투 집단에게 효과적인 공격 무기가 되고 있다. 최근 미군은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집중적인 IED 공격을 받았으며, IED로 인한 사상자는 전사자의 60%에 육박할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