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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하는곳

트롱쁠뢰, 환각의 즐거움...

미술용어 가운데 '트롱쁠뢰(Trompe l'oeil)'라는 말이 있다. 발음하기 고약한, 불어다.

 

trompe -> trick
oeil -> eye

 

 

우리말로 대략 '눈속임'이라 번역될 수 있는 이 말은, 실은 서양인들의 회화사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림이란 무엇보다 '실물과 똑같이 그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한다.

 

 

고대 그리스에는 그림 잘 그리기로 소문난 두 사람이 있었다. 제욱시스(Zeuxis)와 파라시오스(Parrhasios)였다. 두 사람은 누가 더 잘 그리는지 내기를 했다. 먼저 제욱시스가 자신이 그린 그림의 휘장을 젖혔다. 실물과 똑같은 포도송이가 그려져 있었는데 이를 본 새들이 쪼아먹으려고 날아왔다. 의기양양해진 제욱시스가 파라시오스에게 휘장을 걷고 그림을 보여달라고 했다. 그러자 파라시오스는 지금 보고있는 이 휘장이 자신의 그림이라고 했다. 제욱시스마저도 실물로 착각할만큼 똑같이 그렸던 것이다. 제욱시스는 깨끗이 패배를 인정했다.

 


사실은 새의 눈이 사람의 눈보다 훨씬 좋다. 따라서 화가의 눈을 속인 그림보다 새의 눈을 속인 그림이 훨씬 더 실물에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이 이야기는 서구인들이 얼마나 '진짜같은 그림'을 중시하는 지 알게 해 준다. 적어도 150년 전까지는 그랬다. 19세기 중반 이후, 사진도 개발되고 인상파도 각광받으면서 실물과 똑같이 그리는 기술이 무의미해지기 시작했지만, 그 직전까지 2천년 이상은 그야말로 사실주의의 득세였다.

 

 

이 그림을 보자. 영국의 내셔널 갤러리에 걸려있는 한 점의 초상화다.

 

 

 

 

독일 슈바벤 지방에서 1470년 경에 그려진 이 그림에는 파리 한 마리가 붙어있다. 앗! 하고 다가가 파리를 쫓아버리려 하던 사람들은 그것이 그림인 것을 알아차리고 탄성을 내지르게 된다.

 

 

 

도대체 화가는 왜 파리 한 마리를 여기에 그려넣은 것일까? 이것이 바로 보는 이들에게 '착각의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한 트롱쁠뢰의 전통이다. (실은 여기에 유래가 있다. 이태리 피렌체의 대화가 조토는 자신의 스승인 치마부에가 다 그려놓은 그림에 파리를 그려넣어 그를 헷갈리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 일화가 금세 알프스를 넘어 북유럽에게 전해졌고, 화가들은 자신의 솜씨를 자랑하기 위해 너도나도 파리를 그려넣었던 것이다.)   
  

 

 

트롱쁠뢰의 대표가라면 네덜란드의 호흐스트라텐(Samuel van Hoogstraten, 1627-1678)을 빼놓을 수 없다. 렘브란트의 제자이자 17세기 네덜란드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 겸 이론가였던 그는 무엇보다 '환각(illusion)의 즐거움'을 추구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벽에 걸어 놓으면 그림인지 실물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정물화들과 다양한 '핍쇼(peep-show)'장치들은 그의 대표작이다.

 

 

                                             * 호흐스트라텐의 정물화 (1666-1668)    (그림클릭!)
당시 가정의 생활용품들을 알 수 있게 해주는 '풍속화'라 분류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런 그림의 목적은 그저 완벽한 '눈속임'이다. 아마도 화가는, 어느 부자로부터, 손님들을 놀라게 해 줄 그림을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고 이것을 그렸을 것이다. 의뢰인 집의 벽면을 관찰하여 그와 똑같이 바탕을 그렸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 호흐스트라텐의 '엿보기 상자(peep show box)'
작은 구멍을 통해 안을 들여다 보면, 집안 곳곳의 풍경이 심도 깊게 펼쳐진다.
3차원의 공간으로 느껴지지만 사실은 평면에 그려진 매직아이의 진수!
(영국 내셔널 갤러리 소장)       

         

 

 


트롱쁠뢰는 17세기 북유럽에서 대유행하여 Cornelis Gijbrechts(이 사람 이름을 뭐라고 읽어야 될 지 도저히 모르겠다. 어떤이는 기브레히트라고 하던데...)와 같은 작가도 낳았고, 19세기에는 미국에까지 퍼져 윌리엄 하네트와 같은 화가들이 인기를 얻기도 했다.

 

 

 

* Cornelis Gijbrechts(플랑드르, 1630-1675)의 정물화      (그림클릭!)

 

 

 

 

* William Harnett(미국, 아일랜드 출신, 1848-1892)의 정물화
제목은 <든든한 콜트권총(The Faithful Colt)>

 

 


트롱쁠뢰는 정물화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현대에는 건축, 광고, 설치미술 등 다양한 장르에 이용되고 있다. 미국의 존 퍼그(John Pugh)는 회화는 물론 벽화에서도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는 트롱쁠뢰 아티스트이다. 그의 작품을 몇 개 감상해 보자.  

 

 

*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치코(Chico)분교의 Taylor Hall 벽면 (1980)       (반드시 그림클릭!)
무너진 벽을 넘어, 그리스 신전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

 

 

 

 

* 미국 팔로알토(Palo Alto)의 의학재단 건물의 외벽들 (2001)      (무조건 그림클릭!)
아래 사진 왼쪽에 보이는 할아버지는 로댕의 빅토르 위고상이다.

행인들은 로댕의 진품 조각상을 갖다놓은 듯 착각하게 될 것이다...

 

 

 

인류최초의 미학서라고 할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보면, 사람들은 죽은 쥐를 보고는 징그럽다고 느끼지만 죽은 쥐를 똑같이 그려놓은 그림을 보면 미적 쾌감을 느낀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것은 물론 아리스토텔레스가 저 유명한 '모방론(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는)'을 설파하기 위해 꺼낸 이야기이지만, 트롱쁠뢰의 속성을 제대로 설명한 표현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진짜와 똑같은 가짜'를 보며 쾌감을 느낀다. 이러한 환각의 즐거움이야말로 하이퍼리얼리즘을 지탱시켜주는 근력이고, 초현실주의의 '데뻬이즈망(dépaysement... 여기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 다음 기회에...)'이라는 기법의 원류라고도 할 수 있다.

 

 

 

내가 트롱쁠뢰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리얼리티와 판타지는 결국 하나라는 것!

 

...

 

새로운 미학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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