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휴지통

발견하기 힘든 무기-U보트와 한국 해군 잠수함

해군 장보고급 잠수함

미국 독립전쟁이 한창이던 1776년 9월 6일 뉴욕항 앞바다에 머물고 있던 영국 해군 전투함을 향해 계란처럼 생긴 독특한 철제 함정이 물속으로 소리 없이 접근해 갔다. 데이빗 부시넬이라는 의사가 만든 잠수정 ‘터틀’이었다. 터틀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잠수정으로 부르기 힘들 만큼 볼품없는 배였지만 잠수 및 부상을 위한 밸러스트 탱크, 수평 및 수직 추진기, 잠망경까지 갖추고 있었다. 터틀은 영국 전투함 옆쪽에 폭약상자가 연결된 드릴 송곳을 받아 폭파시킬 계획이었다. 그러나 영국 함정의 하부 선체가 동판으로 보강돼 있어 드릴이 동판을 뚫을 수 없었고 결국 작전은 실패했다.

 

 

미국 독립전쟁에서부터 시작된 전투 잠수함의 역사

그로부터 약 90년이 지난 1864년 드디어 실전에서 전과를 올린 사상 최초의 잠수함이 탄생했다. 남북전쟁 당시 남군에 소속돼 북군의 대형 함정을 격침시킨 헌리호가 그것이다. 1864년 2월 17일 남군의 헌리호는 찰스턴항을 봉쇄 중이던 북군의 1200t급 호사토닉함을 함수 앞쪽에 장착된 40kg의 폭약으로 침몰시키는 데 성공했다.

 

 

독일 잠수함 U보트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해온 잠수함은 어릴 때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봤을 줄 베르느의 소설 [해저 2만리]를 꿈이 아닌 현실로 만든 무기다. 각종 첨단무기가 발달한 현대에 있어서도 잠수함은 가장 발견하기 힘든 무기로 꼽힐 정도로 은밀성이 가장 큰 강점이다. 초기의 잠수함이 가졌던 단점들은 과학기술의 발달, 제1·2차 세계대전 등을 거치면서 개선돼 잠수함은 전세에 큰 영향을 끼친 가공할 무기로 변신했다. 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무기가 독일 잠수함 U보트다. U보트는 그동안 많은 영화와 책의 소재가 돼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무기 중 하나다.

 

터틀의 실물크기 모형.
<출처: (cc) Geni at Wikipedia>

제1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독일군 U-9.

 

 

1914년 9월 5일 독일 해군의 U-21 잠수함은 영국 해군의 패스파인더 순양함을 격침시켜 영국군 승무원 296명 중 259명이 사망했다. 이어 9월 22일엔 독일 잠수함 U-9이 1시간여 만에 영국 순양함 3척을 격침시켜 승무원 2200여 명 중 1459명이나 전사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영국 해군이 스페인 무적함대에 대패한 이후 300여 년 만에 최대의 참패로 기록된 사건이었다. 독일군의 U보트는 1915년부터 1918년 사이에 2500여 차례에 걸쳐 총 1218만t의 선박을 격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격침된 영국 선박의 90%가 잠수함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독일군 U보트는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다. 독일군 스스로 침몰시키거나 승전국에 의해 압류됐기 때문이다. 독일 잠수함에 의해 막대한 피해를 입은 연합국은 종전 후 독일 해군의 잠수함 보유를 금지시켰지만 독일은 유령회사를 만드는 방법 등을 써서 잠수함 건조기술을 유지했으며 비밀리에 잠수함을 실제로 건조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독일 U보트는 다시 한번 전쟁의 주역으로 떠오른다. 그 서막은 1939년 10월 독일 잠수함 U-47이 각종 장애물과 난관을 뚫고 영국 스카파플로 해군기지에 침투, 영국 전함 로얄 오크를 어뢰로 격침시키는 것으로 열렸다. U보트들은 칼 되니츠 제독의 ‘이리떼(Wolf Pack)’ 작전에 따라 영국으로 각종 장비와 물자, 병력을 수송하던 연합국 수송선들을 무차별 격침해 영국의 숨통을 바짝 조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잠수함대를 이끈 칼 되니츠(Karl Dönitz, 1891~1980) 제독과 U보트.

 

 

이리떼 작전은 독일군 잠수함들을 대서양 주요지역에 분산시켜 초계를 하다 잠수함 한 척이 연합국 수송선단을 발견하면 독일 잠수함사령부에 보고, 주변의 잠수함들을 불러모아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하는 방식이었다. 독일군은 이 작전에 따라 한번에 수십 척의 수송선을 격침시키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U보트들은 연합국 함정 148척을 비롯, 상선 2759척을 격침해 무려 1400여만t의 물자와 장비를 수장시켰고, 약 20만 명의 사상자를 초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을 승전으로 이끈 명수상 윈스턴 처칠이 회고록에서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나를 가장 두렵게 한 것은 U보트였다”고 쓸 정도로 U보트는 위협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U보트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타입-7(Type-Ⅶ)’형이다. 총 700여 척이나 건조된 이 함정은 당시로선 최고의 잠수함이었다. 길이 64~67m, 배수량 620~860t으로 직경 533mm 어뢰발사관 5문과 어뢰 11~14발, 88mm 함포 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패전함에 따라 U보트는 다시 한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나 독일은 이내 209급 잠수함 등을 통해 재래식 잠수함 강국의 위상을 되찾는다. 현재 세계 각국이 보유한 재래식 잠수함의 상당수는 독일제다.

 

 

한국 해군의 잠수함

한국 해군의 주력 잠수함도 모두 독일에서 설계한 잠수함을 도입한 것이다. 현재 우리 해군은 구형인 209급(1200t, 장보고급) 잠수함 9척과 최신형 214급 잠수함(1800t, 손원일급) 3척을 보유하고 있다. 이중 대부분은 국내 조선소에서 건조한 것이지만 우리 업체들이 독자적으로 건조한 것이 아니라 독일의 기술지원으로 만든 것이다.

 

해군 214급 잠수함 손원일함.

해군 209급(장보고급) 잠수함.

 

 

해군의 209급 잠수함은 환태평양 각국 해군이 참가한 가운데 실시된 ‘림팩 훈련’에서 여러차례 미 항공모함과 이지스함 등 가상 적군의 함정들을 ‘가상 격침’하는 데 성공해 훈련 참가국들을 놀라게 했다. 디젤-전지로 추진되는 재래식 잠수함은 충전 등을 위해 하루에 한번 정도는 수면 가까이 부상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약점이다. 하지만 214급 잠수함은 ‘AIP(공기불요) 시스템 ’을 장착, 최대 2주 가량 물 위로 떠오르지 않고도 바닷속에 작전할 수 있는 강점을 갖고 있다. 
 
해군은 당초 3척의 214급 잠수함을 도입할 계획이었으나 6척을 추가 도입키로 해 총 9척을 보유할 계획이다. 또 3000t급 ‘장보고-3’급 중잠수함도 우리 기술로 건조, 총 18척의 잠수함으로 구성되는 잠수함 부대를 갖추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