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을 하는곳

가이 포크스 유감

지난 달 17일, 미국 뉴욕에서는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구호의 반(反)월가 시위가 시작되었다. 부(富)를 독점한 상위 1%, 특히 금융자본가들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금융기관의 부패와 빈부격차 심화를 규탄하는 이 시위는 전세계로 퍼져 이달 15일에는 82개 국가 951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우리나라에도 상륙해 같은 날
서울 여의도에서 소규모 시위가 있었다.


 

 

나는 엊그제, 관련 뉴스를 보다가 흥미있는 장면을 발견했다. 

 

 


 

 

 

 

 

앗!

 

이... 이것은?? 

 

 

 

 

 

가이 포크스 가면!!!

 

 

 

 

 

 

알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브이 포 벤데타>라는 영화에 나오는 가면 캐릭터이다.

 

 

지난 2008년 촛불집회에도 등장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들은 당시 DVD 동호회인 'DVD Prime'의 회원들로,

영화 마니아들답게 영화 속 유명 캐릭터로 분장해 시위에 참가했다...는 정도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다. 

 

 

 

 

 

 

 

 

 

 

 

 

현재 전세계의 각종 시위에 이 가면들이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

 

 

 

 

 

 

 

 

 

 

 

 

 

그것은 영화 속 이미지가 그만큼 강렬했기 때문일 것이다. 

 

 



 

 

 

 

 

 

<브이 포 벤데타>의 하일라이트~

런던 시민 모두가 이 가면을 쓰고 거리에 나와 데모를 하는 장면...

 

 

 

 

 

 

'브이(V)'는 영화의 주인공 이름이고 '벤데타(vendetta)'는 '피의 복수'를 뜻하는 말이다. <브이 포 벤데타>는 어두운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독재권력에 저항해 복수를 꾸미는, 사회성 강한 SF 영화이다. (남들은 다 최고라 하는데, 나는 솔직히 재미없었다.ㅋㅋ)  

 

 

 

 

이 영화의 주인공인 V는 '가이 포크스'라는 실존인물을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가이 포크스(Guy Fawkes, 1570~ 1606)

영국에서 국왕을 시해하려 한 혐의로 처형된 반역자다.

 

 

1605년 11월 5일은 '화약 음모 사건(Gunpowder Plot)'이라 불리는 영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역모가 시도됐던 날이다. 이날 가이 포크스라는 사람이 영국 의회 건물을 통째로 폭파하려다 현장에서 체포돼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당시 영국은 제임스 1세가 다스리고 있었다. 이전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후에 뒤를 이을 사람이 없어 1603년에 스코틀랜드에서 모셔온 왕이 제임스 1세였다. 그는 영국 국교회를 절대주의의 지주로 삼고 청교도와 가톨릭을 심하게 탄압했다. 가톨릭 교도들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제임스 1세 암살 계획을 꾸몄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가이 포크스였던 것이다.

 

가이 포크스 일당은 사전에 교황의 승인까지 받은 뒤 일을 꾸몄다. 국회 의사당과 인접한 집을 사서 땅굴을 파고 의사당 지하실까지 들어가 36통의 화약을 들여 놓고 그 위에 석탄과 장작으로 덮어 놓았다. 거사일은 11월 5일이었다. 그 날은 의회 개회일로서 제임스1세와 상원, 하원, 그리고 왕비와 왕자까지 모두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가톨릭 교도들을 억압하는 무리들을 한방에 싹쓸이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시계탑 '빅벤'으로 유명한 영국의 국회의사당

 하마터면 1605년에 완전히 폭파될 뻔했다...

 

 

 

그런데 공모자 중 하나가 자신의 친척인 의원 한 명에게 의회에 출석하지 말라고 경고 편지를 보낸 것이 화근이 되어 덜미가 잡혔다. 결국 가이 포크스는 의사당 지하에 쌓아놓은 폭약에 불을 붙이려던 순간에 극적으로 체포되었고, 심한 고문 끝에 잔인하게 처형당했다.

 

 

 

1605년 11월 5일 밤의 한 장면

(우리 아들 생일이 하필 11월 5일인데... ㅋㅋ)

 

 

영국 성공회 교도들은 이후 매년 11월 5일을 '가이 포크스의 밤(Guy Fakwes Night)'으로 정해 축제를 연다. 가이 포크스를 본떠 만든 허수아비를 끌고 마을을 돌아다니다 불태워 버리고 불꽃놀이를 즐기는 것이다. 띨띨한 반역자를 조롱하고 그들의 음모를 잊지 말자는 의미로 시작된 행사이다. 영어의 'guy(녀석, 놈)'이란 말도 실은 그때 만들어 끌고 다니던 가이 포크스 인형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영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가이 포크스 축제들

 



 

 

 

그때 불태워지는 '가이'들

 





 





 

<브이 포 벤데타> 영화에도 여러 번 나오듯,

영국인들은 이 날 이런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Remember, remember 
The Fifth of November 
The gunpowder treason and plot 
I see no reason

why the gunpowder treason 
Should ever be forgot 

기억하라 기억하라 
11월 5일을

화약 음모 사건을

절대로 절대로

그 음모는 
잊혀져선 안 되리

 

 

 

 

영화 <브이 포 벤데타> 포스터

본래 화약 음모 사건 400주년 기념으로 2005년 11월 5일에 전세계 개봉하려 했는데

편집이 늦어져서 2006년에 개봉했다고 한다.

 

 

 

 

 

 

요즘 집회에 등장하는 가이 포크스 가면을 보고 나는 사실 당혹스러웠다. 

 

가이 포크스는 혁명가도 지도자도 아니었다.

그의 행동은 명백한 반역의 음모였다. 

 

그런데

오늘날 가이 포크스는 

마치 압제에 저항하는 투사의 상징처럼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로테스크한 표정의 가면을 쓰고서...

 

 

   

 

이 가면에 대한 저작권은 영화를 만든 타임 워너사가 가지고 있다.

이 가면은 배트맨과 해리포터, 다스베이더를 제치고 아마존닷컴에서 가장 많이 팔린 마스크라고 하며,

연간 10만개 이상이 팔려 타임 워너사의 주요 수익원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재벌반대 시위 덕분에 날개 돋친 듯 팔려, 타임 워너사는 더욱 재벌이 되었다는 아이러니...)

 




 

 

 

나는 특히, 저 가면이 우리나라 집회에도 등장한 것이 못마땅하다. 

 

 

우리가 몰라도 되는 400년 전 남의 나라 역사에 나오는 인물을... 도대체 왜?

 

 

 만일 정말로 가면이 필요하다면 우리 것도 좋은 게 많지 않은가?

 




 



 

이것이 세상을 비판하고 권력에 저항하는 우리의 모습일 것이다.